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JO Sep 22. 2023

15 불

아득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딱딱한 자갈길을 맨발로 뛰어오고 계셨다.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얼마를 그렇게 달려오신 것일까. 꿈인가 싶었다. 내가 운전하고 있던 경운기의 굉음 소리가 내 이름을 집어삼켰고, 쥐꼬리만큼 남아 있던 그 여운마저도 늦가을 들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쉰 목소리로, ‘불, 불'이라고 외치셨다.

그대로 경운기를 멈춰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멀었다. 경운기로 15분 정도 왔으니까. 막상 뛰어가려니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남겨진 경운기의 아우성이 나를 쫓아왔지만 차츰 귓가에서 멀어졌다. 울컥울컥 내 숨소리가 가을 들녘의 평온을 깨뜨리는 사이렌 소리처럼 불편했다. 자꾸자꾸 바람이 일으켜졌다. 바람과 불. 나는 달려야 했다.  

    

1994. 10. 31. 10월의 마지막 날. 내가 그해 11월 10일 공무원 발령을 받았으니 발령받기 딱 10일 전이었다. 늦가을 들녘. 밤은 부지런히 익어가고 있었고, 잡풀과 잎새들은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뒤척였다. 어머니가 밤도 따고 잡풀들은 모아 태워야겠다고 해 경운기를 몰고 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올해 밤이 많이 열렸다고 기분이 좋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셨다.      

밤이란 놈은 참 형상이 기이하다. 밤의 꽃향기는 한없이 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무장을 한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날카로운 가시로 칭칭 둘러싸고 그 안에 다시 단단한 껍질로 휘감는다. 또 그 안에 쓰디쓴 속껍질로 잔뜩 감싼다. 배, 바나나, 살구 모두 껍질을 까면  바로 먹을 수 있다. 고구마나 사과는 껍질을 안 벗기고 먹으면 더 영양가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기이한 게 아니라 가장 고상한 열매가 아닐 수 없다. 포졸들이 지키는 몇 개의 문을 거쳐 임금님이 거처하는 궁궐에 이르는 것처럼 층층이 자신을 지키고 있으니! 버스 타고 중학교 다닐 때 차멀미에 좋다며 어머니께서 주신 노란 알밤을 자주 먹었다. 어머니는 가을만 되면 밤 줍느라 바쁘셨다. 어머니 허리를 굽게 한 주범이 밤인가 싶다.  

    

나는 긴 막대기로 높이 매달려 있는 밤을 털었고, 어머니는 밤을 주웠다. 얼마쯤 그렇게 밤을 따고 곧 마른 밤송이와 잡풀들과 나뭇잎을 밭 한가운데로 모았다. 널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모아놓고 보니 그 양이 제법이다. 어느 정도 작업이 끝나자 어머니는 마른풀을 태우시겠다고 하고 나는 빌린 경운기를 돌려주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두 손을 움켜쥐고 온몸에 힘이 다 빠지도록 몇 번을 돌려대고 나서야 시동이 걸렸다. 초보 운전인지라 양손에 단단히 힘을 주고 긴장된 자세로 오로지 앞만 보고 경운기를 몰았다.      

한참을 그렇게 경운기를 몰고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서고 있었다. 며칠 후 발령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4년여를 다니던 안정된 은행을 부모님 몰래 덜컥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는데 운 좋게 합격한 게 엊그제였다. 만약 떨어졌더라면 영영 농사를 지으며 한평생 보낼 위기에서 탈출한 셈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머니가 내 뒤에서‘불’이라고 하셨다. 눈앞이 캄캄했다. 밭 한가운데서 어떻게 불길이 번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달렸다. 눈앞에 30여 미터 정도로 길게 불길이 번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훅 날아든 불길이 내 얼굴을 삼킬 듯이 할퀴고 뒤로 물러섰다. 나는 정신없이 맨손으로 흙을 파 던지기 시작했다. 불길 아래로는 완만한 계곡이다. 계곡은 진흙이 묻혀 있는 곳이었다. 어렸을 적 학교 미술 시간에 필요할 때 수시로 와 진흙을 파곤 했던 그 계곡. 그때는 참 시원했다. 맨손으로 진흙을 파도 손가락도 아프지 않았고 마냥 즐거웠다. 금은보석처럼 캐낸 진흙을 누가 많이 캐냈는지 친구들과 서로 재보고 얼굴에 묻히며 장난을 치느라 어두워진 줄도 몰랐다. 진흙이 든 비닐봉지에서 느껴지던 그 미끈함이 내 손아귀에서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리다 사라졌다.   

   

나의 노력도 보람 없이 불은 계속 번지고 있었다. 멀리뛰기 선수가 앞뒤로 손을 흔들며 힘차게 구름판을 구를 준비를 하듯, 산들바람을 등에 업고 한달음에 저 산으로 달음박질칠 기세였다. 여름날 그렇게 무성하게 뻗어 오르던 칡덩굴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잎새들이 어느새 삐쩍 말라비틀어졌다. 몇 년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들은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온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이 계곡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순식간에 ‘큰실봉’이다. 조상 대대로 우리 동네를 지켜주고 있는 해발 110미터 큰실봉. 큰실봉이 긴장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들판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야! 불이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공무원 발령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불타오르는 큰 실봉, 인계지서에서 조사받는 내 모습이 휙휙 스쳐갔다. 형사는 다짜고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무직인데요. 그렇지만 내일 모레 검찰수사관으로 발령받을 예정…….’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데 누가 맨 처음 불을 피웠냐고 윽박질렀다. 어머니는 옆에서 ‘내가 다했다’며 울고 계셨다. 하늘이 노랬다.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셨다. 아버지 건강하셨을 때에는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과 지독한 가부장제 권위에 숨도 제대로 못 쉬셨고,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에는 병 수발에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느라 벌써 허리가 반은 휘셨다. 그래도 여전히 자식들을 향한 마음은 끝이 없다. 내가 내려간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회관 앞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시고, 또 손수 콩을 찧고 갈아 땀을 뻘뻘 흘리며 아궁이에 불을 때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를 만드셨다. 어머니는 내 삶의 쉼터였다. 부족함이 없는 그늘이셨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식지 않는 따뜻한 아랫목이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이 세상 단 한 분이신 어머니에게 티끌만 한 오점도 남겨지지 않도록 이 불을 꺼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흙을 팠다. 큰실봉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불길은 ‘잘못 건드리면 크게 다친다'는 듯 더욱 과격해졌다. 정말로 큰실봉까지 1미터도 남지 않았다. 5분, 10분, 손톱 절반이 꺾이고 그 아래로 핏기가 흥건했는데 아픈 줄도 몰랐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바닥이 시멘트처럼 단단해서 도저히 더 이상 흙을 팔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었다. 내가 불 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그리고 털썩 쓰러져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이 영혼을 구해주소서!   

  

어디선가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꿈이겠지. 돌아볼 힘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무서운 자연 앞에 꿇어 엎드려 마지막 간청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이 손에손에 삽을 들고 흙을 파 던지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불길은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는 상여처럼 그렇게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삽질 소리가 경쾌했다. 쏟아지는 흙더미 속으로 맨 앞에서 큰 실농을 향해 가장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길이 ‘으악'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시뻘건 무리들이 도망할 틈도 없이 도미노처럼 연이어 쓰러졌다. 절뚝거리며 두 손을 들고 달음질치는 검은 연기 내음이 향기로웠다. 그제야 잔뜩 긴장했던 큰칠봉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언제 오셨는지 어머니가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 주셨다. 아들을 위해 평생 가시에 찔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기쁜 하루였다. 하마터면 오늘도 어머니가 또 가시에 찔리고 불에 델 뻔했다.                                         

            

작가의 이전글 14 잘못된 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