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업고 튀어'로 모두가 선재를 업고 튀고 싶어할 때, 나는 선재를 업으려다가 말고 태성이를 업었다.
처음 본 순간 인터넷 소설의 남주가 현실에 등판한다면 정말 저럴 거라고 생각하며 고등학생의 솔이처럼 함께 빠져버리고 말았다.
계속 보다 보니 태성이가 아니라 태성이를 연기한 송건희 배우 님에게 입덕했다.
이 입덕은 나를 '선재 업고 튀어' 촬영지에 가고 싶게 만들었고, 추천한 커피 맛집 카페와 배우 님이 다녔던 곳을 찾아서 덕질투어를 하게 했다.
아이돌 때도 생일 때나 카페 투어를 해보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상위 단계의 덕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팬 카페에 가입했고, '버블'이라는 유료 소통 어플을 구독하고,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X, 유튜브까지 팔로우 하면서 그렇게 덕질했다.
덕질에 필수인 포토 카드를 10장이나 만들어서 늘 비닐 팩에 보관하고, 그걸 가방 속에 넣어서 다닌다. 카페에서, 밥 먹을 때 늘 인증하듯이 사진을 찍어놓는다. 아이돌 팬일 때, 다른 팬들이 하는 걸 보기도 했고 나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서 잘 아는 예절샷이었다.
예절샷
덕질하고 나서 많은 일이 생겨났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고, 나는 용감하게 도전하며 시도했다. 그 시도는 매번 무참히 실패로 돌아갔지만 혹시 모른다.
데뷔 기념일을 지나 팬미팅을 하고, 배우 님의 생일을 지나서 대만 팬미팅과 예능, 시구 소식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요즘이다.
더 재미있는 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이즘이다.
한 달 정도 전 쯤에 포토이즘을 찍었었는데, 이번에 생일 기념으로 포토이즘 프레임이 새로 나온 것이다! 기다리고 있다가 생일 당일에 맞춰서 옷을 챙겨 입고 사진을 찍었다. (8월에 나가면 사랑이라던데, 포토이즘 하나를 찍겠다고 이 더위에 휴대용 미니 선풍기를 들고서 30분 가까이 걸어갔다.)
포토이즘 프레임 사진
포토이즘을 찍기 며칠 전에는 서울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 김에 근처 우체국을 찾으러역에서 20분을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고 보니 다른 역까지 걸어왔고, 그 근교의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재 업고 튀어'가 끝나고 나서 대본집과 굿즈를 기다리던 나는 건희 배우 님의 필모그라피를 하나씩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미씽: 그들이 있었다 시즌 1, 2', '조선로코-녹두전', '생일 편지', '하찮아도 괜찮아', '플랫', '헬로 스트레인저 파일럿', '쌍갑포차', '조선변호사','SKY캐슬'까지 다 보고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과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최종병기 앨리스'만 아직이다.
'미씽: 그들이 있었다'를 보고 나서 다 본 게 아쉬웠다. '토마스 차'라는 캐릭터를 이대로 떠나보내기가 아쉬운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개화기 시절의 옷을 입고, 머리는 금발로 염색한 카페 하와이의 사장님. 그런 토마스가 처음에는 신비롭고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로 보였는데, 알수록 다채롭고 복잡한 모습의 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따뜻하고 친절하지만 두려움이 있고,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을 차갑게 대하더라도 모질게 굴지 못하는 그 모습들이 좋았다. 내가 덕질 때문에 편을 드는 것도 있겠지만, 왠지 토마스라면 무슨 일을 해도 그럴만한 사정이나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로코-녹두전'을 봤을 때는 황태의 모습이 모두 이해가 됐다. 아마 누구에게나 탓할 상대가 필요하고, 날 속였다는 배신감이 들었을 거고, 그 때문에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벼랑 끝에 내몰린 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네 탓을 해야 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과 악의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생일 편지'의무길이는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터졌을 그 당시의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이다. 노인인 현재와 청년인 과거를 오가며 생애를 보여주는데, 위험한 순간이 많아서 보다가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며 진정하고 봐야 했다. 몇 번이고 죽을 뻔한 모습과 그 안에서도 친구를 지키려고 나서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초토화된 곳에서 찾아나서는 모습까지 펼쳐졌다. 그럴수록 나는 휴지를 끌어안고 울었다. 무길이의 시대를 살았을 누군가에게는 이보다 더 처참한 현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아팠던 것 같다.
'SKY캐슬'의 영재는 겉으로 완벽해 보여도 속은 그만큼 불완전한 한 사람이었다. 모든 걸 다 부모님의 뜻 대로 살았기에, 온전한 자신의 것이 없었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는 참지 못 하고 터져버린 게 보였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노력해도 자신의 꿈과 다른 의대를 진학하게 하는 모습은 현실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영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버텨냈고, 도망칠 용기가 있었고, 발버둥치며 자신을 지키려고 애썼으니까.
'하찮아도 괜찮아', '플랫', '헬로 스트레인저 파일럿'은 모두 웹 드라마다. '하찮아도괜찮아'에서기우가 말수가 적고 깐깐한 캐릭터여서 신기했다.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만 봐서 그런지 이런 모습도 잘 어울리는 게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속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차가운 모습도 잘 어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플랫'은 청춘 로맨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플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더 재밌었고, 커플이 나와서 그때의 소감을 얘기하는 인터뷰 형식이라 더 사실처럼 느껴진 게 가장 큰 몰입 포인트다. '헬로 스트레인저 파일럿'이 파일럿으로만 남은 게 아쉬웠다. 2016년도에 '헬로 스트레인저'와 비슷한 내용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 귀에 캔디'라는 제목이었고, 연예인이 익명의 사람과 통화하면서 교감, 소통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물리치료사가 있는 병원이라면 손목 물리치료 받으러 매일 출근도장을 찍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쌍갑포차'는 특별출연이어서 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 다 아는 부분이었다. 초반부에 어린 월주가 돌봐준 세자였다. 누군가의 어렸을 적 모습이기도 하다. 이때 알지 못한 걸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렇게라도 봤다는 걸 알게 되어 문득 반가웠다.
'조선 변호사'를 처음 봤을 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임금인 이휼이 바로 건희 배우 님이라는 사실을...! 눈을 뜨면 뭐 하나, 알아보지도 못 하는데. 내 눈에 크나큰 슬픔과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임금이 잘 어울리면서도 목소리가 달라지는 거에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느껴졌고, 그때의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건 위화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나에게 해봤다.
늦은 덕질은 쉴 틈이 없다. 봐야 할 게 많고, 해야 할 게 많고, 스케줄이 늘어나면 더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