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나니 더욱 그리운

by 김희재


몇 달 새에 부쩍 허리가 더 굽으신 당신이 우리 준다고 챙겨 놓으신 보따리 속에는 여러 개의 까만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어요.


그 속에 든 건 올망졸망 아직 채 자라지 못한 것 같은 가지가 다섯 개, 애호박 세 개, 이파리가 너무 싱싱해서 비닐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깐 파 한 움큼, 들깻잎 한 뭉치. 풋고추 한 움큼. 이건 모두 마당 안에 있는 텃밭에서 어머님이 손수 기른 것들이죠.


색이 아주 고운 태양초 고춧가루 10근, 참깨, 들깨, 서리태 콩, 일일이 다 쪼개서 망에 담은 마늘, 다 까서 잘 찧어서 얼린 마늘, 참기름, 들깻가루, 엿기름 등. 이건 동네에서 제일 잘 된 것을 골라 사서 직접 말리고 다듬고 빻아서 손질한 것들이고요.


야무지게 잘 묶은 봉지를 풀어 하나씩 꺼내서 제자리에 넣다가 문득 어머님의 굽은 허리와 야윈 어깨가 떠올랐어요.


만일 어머님이 떠나시고 나면 누가 이리도 살뜰히 챙겨서 보따리를 꾸리실꼬.





제가 젊었을 적엔 말이에요, 어머님.


시골살이라곤 해 본 적이 없는 며느리라 아예 손댈 것 없게 만들어서 싸주신 것도 제대로 챙겨서 먹을 줄 몰랐어요. 싱싱한 건 썩혀서 버리기 일쑤고 썩지 않는 건 이리저리 아는 사람 다 퍼주고 그랬답니다.


그것이 어머님의 정성이고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돈으로 따지면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걸 바리바리 싸주시는 것이 귀찮아서 어떻게 하면 주시는 걸 안 가지고 올까 궁리를 하던 때도 많았답니다.


어머님이 챙겨 주시려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괜찮다고 사양하는 저를 경우가 바르고 염치 있는 며느리라고 생각하셨겠지만 그건 어머님이 제게 속으신 겁니다. 시골에서 가져온 것을 다 먹어치우는 게 제게는 엄청 스트레스였고 내 입맛과 다른 어머님의 음식을 먹기도 싫지만 버리기는 더 힘들어서 죽어라 거절했던 거랍니다.


그랬는데 말입니다.


어제는 어머님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정말로 소중한 보물처럼 잘 갈무리했답니다.


찧은 마늘은 적당히 녹여서 작은 주사위 크기로 잘라 댓 개씩 지퍼 백에 넣어 다시 얼리고, 야채는 야채실에 마른 것은 냉동실에 제 자리를 잡아넣으며 혼자 울었습니다. 꼬부라져서 잘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보따리를 챙기셨을 어머님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야 제가 철이 드는 모양입니다.


부모는 그저 그 자리에 계시기만 해도 든든한 존재, 삶의 울타리임을 깨닫습니다. 제게 부모는 이제 양가를 통틀어 어머님밖에 안 계시니 저를 위해서라도 꼭 오래 사셔야 합니다.


시집온 지 25년이 지나니 이제는 어머님 음식이 제 음식이 되었고, 어머님 마음이 제 마음 되었고, 어머님이 우리에게 하시듯이 저도 자식들에게 하게 됩니다.


친정어머니는 저를 낳아 기르셨고, 어머님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의 며느리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머님은 언제나 저를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고 늘 신뢰해 주셨지요. 딸처럼 아주 살갑게 여기시고 매사를 저와 의논하시고 무조건 이해하셨고요.


그러고 보면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머님이 자식 복 많은 분이라 칭송받으시도록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다만 만 분의 일이라도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말입니다. 어머님.



(작가의 한마디)


이 글은 제가 20여 년 전에 쓴 것입니다. 아들만 둘을 둔 제게 시어머니는 롤모델이었습니다.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 직접 고백하지 못했던 말을 이렇게 써 놓았네요.


진작에 표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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