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한 시대

모든 기준이 다 달라졌다

by 김희재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탯줄도 자르지 못한 신생아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했다. 알람을 끄고 습관처럼 전화기로 뉴스를 검색하는 중이었다. 밤새 올라온 글이 빼곡하게 많았지만 짤막한 몇 줄로 된 이 글이 나를 벌떡 일어나게 했다.


건물이 붕괴한 지 10시간 만에 매몰된 사람을 찾아냈다. 만삭의 임산부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린 채로 아이를 낳고 숨을 거둔 상태였고, 탯줄로 연결된 아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서둘러 탯줄을 가르고 병원으로 옮긴 덕에 아기는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아기의 부모와 형제 4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2023년 2월 6일에 대지진이 덮친 시리아에서 일어난 일을 나는 이웃집 사람처럼 생생하게 느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있다.


혼자 살아남은 아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기를 지켜낸 엄마의 지극한 모성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 지독한 산고(産苦)를 지진으로 다 무너진 상황에서 겪어낸 그녀를 생각하니 온몸이 저렸다.


어떻게든 뱃속에 품은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려 애쓴 어미 덕분에 아이는 살았다. 매몰된 지 3시간 만에 출산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탯줄로 연결된 채로 아기가 버틴 시간은 약 7시간이었다.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아기를 지키려고 애쓴 엄마의 간절한 모성애 덕분이었다.


어미가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낸 딸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혼자가 된 아가의 사연에 감동한 사람이 많았다.


전 세계에서 입양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후속 기사에 또 가슴이 뭉클했다.


마침내 아기는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처음엔 아기 이름을 ‘아야(기적이라는 뜻)’라고 지었다가 입양되면서 ‘아프라’라고 바꾸었다. 숨진 엄마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내가 시공을 초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바로 곁에서 겪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집에 앉아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제자의 근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캐나다에 사는 페이스북 친구의 모습도 이웃에 사는 것처럼 늘 가까이 지켜보며 산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상 세계,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지 않고 다 저장되었다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자기 목을 치는 무서운 세상이기도 하다. SNS에 올린 글과 사진은 내가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끔 그런 세상이 두려워 멈칫해지면서도 나만 도태될까 봐 계속 머무르고 있다.


나는 매일 운동 삼아 혼자 걷는다. 남들 보기엔 외톨이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이어폰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걷는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지만 늘 함께 산책하며 일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세상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그리 외롭지 않다.



지하철 풍경3.jpg 지하철 안 풍경


동창 모임에 가려고 잠실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신도림역까지 가려면 제법 오래가야 하는데 타자마자 운 좋게 자리가 났다.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철에서 멀뚱히 앞을 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들 묵념하는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마침 건전지 없이 태양광으로 충전해 쓸 수 있는 반영구적인 초소형 LED 램프를 파는 사람이 장황하게 설명하며 다가온다.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도 눈이 마주치지 않게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장사꾼이 지나간 후에도 계속 전화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지루할 새도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신도림역에 도착할 무렵 어디선가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바로 옆에 앉은 여자가 당황하며 가방을 뒤졌다. 입을 가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아 네, 네. 지금 통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그렇지. 지하철 안에서 통화할 수 있지.’


“오늘이요? 제가 지금 어디 가고 있어서요. 네. 그러네요. 친구들이 나오라고 해서 가는 길이에요. 네. 네에~”


‘이 사람도 나처럼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구나. 이렇게 화창한 토요일 낮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그리 큰 목소리로 통화한 것은 아닌데 그녀의 말이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통화 소리에 맞춰 속으로 맞장구를 치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말 대낮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이 한산했다. 서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맞은편 창에 내 옆에 앉은 사람 얼굴이 비쳤다. 달리는 거울 속에 비친 옆 사람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지?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낯이 익었어. 아하!’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 앞에 내 얼굴을 바짝 들이대 주었다.


“어머나, 너...”


그녀는 오늘 모임에서 꼭 만나자고 전화했던 그 친구였다. 그녀가 조곤조곤 통화하지 않았으면 옆에 앉아 가면서도 끝내 서로 모르고 내릴 뻔했다. 시공을 초월하는 세상 때문에 지척이 천 리였다. 만나고 싶은 친구를 바로 곁에 두고도 우리는 내내 혼자였으니 말이다.


(2023년 아르코 창작지원금 선정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