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루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일기 검사를 참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 학교를 마치면, 가방 가득 일기를 담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작고 예쁜 글씨로 두 페이지를 빼곡히 채워온 학생도 있었고,‘밥 먹고 게임했다’는 말 한 줄로 끝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다 읽고,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주었습니다.
짧게 쓰려해도 마음이 따라가다 보면 열 줄이 훌쩍 넘었고, 예시를 들어가며 답을 쓰다 보니, 정작 학생이 쓴 일기보다 제 글이 더 긴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Y양의 일기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럽고, 억울하고, 외로운 마음들.
동생이 잘못했는데도 부모님은 늘 동생 편을 들고, 언제나 양보해야 하는 건 자신 뿐이라는 서운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분명 너와 동생을 모두 사랑하실 거야. 다만 첫째이기 때문에,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때로는 기대와 부담으로 느껴졌을지도 몰라."
방과 후에 몇 차례 상담을 이어가며, 조심스레 권하기도 했습니다.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부모님과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이제 괜찮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Y양의 일기에서 ‘죽고 싶다’는 문장을 보기 전까지는요.
그날 저는 손이 떨리고 숨이 잘 안 쉬어졌습니다.
제 선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관리자 분들께 알렸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으니 부모님께 먼저 이야기해 보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수십 번을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님께 그 문장에 대해, 그리고 Y양의 마음에 대해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 한마디를 더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께서 Y양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이해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 말에 어머님은 짧게 “알겠어요.”라고 답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후로 다시 통화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 그날 이후 Y양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교실에서 웃는 일이 늘었고, 일기에도 밝은 내용이 하나둘 늘었습니다.
다행이었지만, 제 마음은 오래도록 무거웠습니다.
나는 혹시, ‘전달’만 하면 될 일을 섣불리 조언한 건 아닐까.
그날의 한마디가, 어머님께는 무례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그해 이후로 저는 일기검사를 그만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