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물멍 지는 어디인가?
카페가 대형화되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 “카페를 왜 가느냐”는 질문을 접했다.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30분, 1시간을 운전해 신상 카페를 찾아간다고 했다. 특히 바다나 강이 보이는 카페는 그 자체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존재가 된다. 물이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단순한 커피 한 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단다. 아파트도 강변뷰가 비싸고, 호텔도 바다뷰가 비싸다. 제각각 사람들은 물에 뭔가 홀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멍의 명상
사실 물멍은 그 자체로 명상이다. 물의 흐름과 파동은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속에서 소소한 일상의 걱정을 잊게 한다. 한강변 아파트나 강 뷰 아파트가 고급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햇살보다도 물의 풍경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한강변 아파트, 강 뷰 아파트가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였다. 대기업에서 지은 아파트 중에서 강변뷰를 뽑느라고 거실을 북향으로 뽑기도 한 곳도 있다. 사실 거실을 북향으로 뽑으면 낮에는 햇살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 햇빛보다 물이 보이는 강변 뷰가 더 낫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는 모양이다. 사실 내 경우는 햇살과 강변 중에서 골라라 하면 나는 단연히 햇살이다. 그럼에도 집이 아닌 카페에서 보는 물멍 카페는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기도 한다. 물이 주는 공간의 힘인지, 카페가 주는 공간의 힘인지 모르겠으나 물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바다와는 좀 다른 것이 있단다.
어쩌면 물이 주는 공간의 힘은, 우리에게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진정한 안식을 선사하기 때문일까. 진짜 물이 주는 힘이 그런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나 역시도 물을 보고 오면 숨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욕망에 기인된 것일까. 물이 보이는 곳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게 강이든 바다이든. 물이 있다는 이유로 명소가 되는 곳은 많다. 평소 강변 뷰를 못 만끽한 사람, 호텔의 바다뷰를 덜 즐기는 사람들이 물을 찾아서 카페를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예부터 물은 도시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다. 강변 따라, 바다 따라 생존의 욕망은 살아서 숨 쉬었다. 관광지의 강변 주변 상가는 언제나 장사 잘 되는 명당이었다. 바다를 따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어부들에게는 물이 생존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물이 보이는 물길 따라 카페를 가는 것이 힐링이다는 이야기, 이상하게 물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이야기. 그 욕망 따라서 카페는 강변 주변에, 바다 주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강변인지 호수인지 알 수 없으나 딱 물가 바로 옆에 세워진 안동 <폴모스트> 거기에서 인간의 욕망을 읽고 왔다면 너무 거창할까. 원래 모텔이었던 곳을 개보수하여 카페로 만들었다. 선대에서 숙박업으로 번창했고, 세월이 지나서 그의 아들이 카페로 바꾸었단다. 가 봤다. 카페를 가 보기 위하여 30분, 1시간 운전하여 가 본다는 것처럼 나도 차를 운전해서 가 봤다. 남안동 IC를 타고 가 보는 거기는 묘한 여운이 깃드는 곳이기도 했다. 카페의 공간을 즐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가는 길,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면서 가 보는 그 과정의 여정도 사실 설레기는 한다. 임산유원지 주변의 길목에서 어떤 터널을 봤다. 어떤 돌덩어리 자체를 뚫어서 터널을 만든 곳. 안동에서 대구 가기 위하여 돌을 뚫었다는 설명을 지인에게 들었다. 새삼 옛 어른들의 지혜가 보인다고 할까. 아니면 절박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안동의 <폴모스트>를 다녀왔다. 카페 공간에 꽂혀서 어디 삼박하다는 느낌이 들면 어디든 차를 끌고 다닌 몇 년이 있었다. 나도 여기에 꽂힌 이유는 물멍이었다. 그게 바다인지 강인지 알 수 없으나 거기 가면 물멍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낭만을 성큼 물어다 준 듯하다. 카페에서 물멍을 즐기며, 나는 그 공간이 주는 힘을 깊이 느꼈다. 물가에 자리 잡은 카페는 마치 고요한 호수와 같다.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물의 풍경은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를 한층 더 내면으로 들여보낸다. 그곳에서의 물멍은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듯한 경험이다.
안동 지인에게 <폴모스트>를 왔다고 이야기했다. 어, 재미있는 이야기하나를 던져준다. 거기는 원래 모텔이었다고 모텔이었는데 코로나를 즈음하여 장사가 안 되어서 리모델링하여서 카페가 되었다고. 아버지세대에서 모텔을 했고, 아들세대에서 카페로 변신한 셈이다. 나름 성공한 케이스인가. 사람들이 연일 붐비고 있으니. 실상 내부의 손익분기점은 손님이니 알 수가 없다마는 나름 힙한 장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층까지 연결된 건물은 올라가면 갈수록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포근이라는 단어보다는 연인끼리 오면 어디 으슥한 공간으로 가서 은밀한 스킨십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할까. 소파가 그랬다. 너무 폭신해 보이는 그 무엇에 어릴 때 몰래 본 소설에서의 은밀한 연애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서 화끈거려서 얼굴이 달아올라오기도 하는 그 무엇에 3층은 패스하고 2층쯤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연애라는 것이 뭐 별 건가. 서로 마음이 통하여 자주 보고 싶고, 자주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게 연애 아니겠는가. 그게 참... 언제나 밀고 당기는 시소게임이기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네 같기도 하지. 이런 공간, 이런 카페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물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여기 오기도 하는데 정말로 대화를 하면 갈등이 해소되기는 할까. 연애든 그냥 일상의 소소한 하루이든 여기에서 뭐든 해소되어서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층까지 자리한 거기는 창 앞으로 자리를 전면 배치해 두기도 했다. 건물 따라서 일렬로 도열되어 있는 주차된 차들을 보면서 한 눈에 요즘 뜨는 곳이구나, 하는 직감을 했다. 물을 바라보면서 전면이 통유리로 된 거기에는 오른쪽, 왼쪽 모두를 봐도 물이 보였다. 사실 강인지, 호수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 물을 중심으로 카페를 만들었구나. 사람들은 저 물 때문에 여기에 오는구나. 저 물 때문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영악함이 주는 공간
안동 <폴모스트>는 물멍하기 좋은 카페였다. 거기에 뒷면은 시골풍경. 통상 카페를 만들면서 마을 한 복판에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쪽이 자연풍광이면 다른 한 쪽은 인위적이다. 벽으로 시선이 차단되거나 다른 창 너머는 어수선한 시선이 보이거나, 그러나 여기는 동네 한 중간에 머물러서 앞은 물, 뒷부분은 시골 풍경이다. 영악하게도 어느 한 부분을 막아두지 않았다. 공간이 사람들 심리를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드는 곳이다. <폴모스트>는 층고가 아주 높아서 개방감은 있는데 치약 한 부분도 있었다. 층고가 높은데 방음은 안 된 공간이다 보니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 건축물을 재활용하는데 사실상 인테리어만 바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사람들 소리가 웅웅거리면 앉아 있는 내내 내 목을 잡았다. 이미 이 공간의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내 경우는 좀 힘들었다. 다행히 공간이 워낙 넓어서 사람들이 덜 있는 한적한 테이블에 앉으니 그 웅웅거림은 없었다. 사실 나를 빼고는 다들 그 공간에 익숙해져 있는 듯 하다.
엄마랑 데이터 하러
여기 <폴모스트>를 홍보하는 카피 한 줄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엄마랑 데이트 하러” 가는 카페란다. 엄마랑 데이트 하기 위한 공간은 어떤 느낌이 들어야 할까. 엄마랑 아들, 엄마랑 딸, 어느 쪽이 더 감정이 말랑말랑 해 질까. 실제로 모녀지간, 모자지간인 듯한 손님들이 제법된다. 카페 공간에서 엄마를 중심으로 데이트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속삭이는데 이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한참 물멍을 하는데 문득 저 물이 아까워 카페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을 이렇게 평면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강은 굽이굽이 연결되고, 호수는 원형으로 둘레를 만든다. 이렇게 물을 평면으로 보는 것은 사실 좀 드물다. 여기 <톨모스트>에서 보이는 물의 시선은 딱 평면이었다. 마치 운동장 스탠드에서 앉아서 일직선의 100미터 달리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운동장 트랙을 도는 계주의 느낌 말고, 딱 100미터 직선거리를 보는 그런 느낌. 그래서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만 옮겨야 이 공간을 즐길 것 같다. 이 직선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간의 오해나 묵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직선이면 어떤 날은 불안하지만, 어떤 날은 그게 편안 할 수도 있다 싶으니까. 평명의 물멍, 공간이 주는 상상이다.
군위의 <댐댐> 역시 물멍 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곡선의 물길을 바라보며, 나는 그 물이 우리 일상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생각했다. 물은 우리의 삶처럼 여러 경로로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물을 바라보며, 나는 나 자신을 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안동 가는 길에 군위를 일부러 경유해서 갔다. 가는 길에 하늘이 너무 맑아서, 초록이 너무 예뻐서 방송국에 문자로 사연을 보냈다.
"이런 하늘 보셨나요? 막연히 군위가 끌려서 안동 가는 길에 중간에 경유지 하나 찍었습니다. 아무도 운전하지 않는 도로에, 한 번도 안 와 본 이 도로를 운전하며 생클 듣습니다. 운전하면서 듣는 생클이 너무 좋아서 차 세워 두고 이런 문자 보내는 미친 짓 합니다"
물멍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연결, 그리고 내면의 치유를 위한 시간이다. 사람들이 카페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평온함을 찾기 위해서이다. 경치 좋은 카페에서의 물멍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한 순간을 선사하며, 잊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 일깨운다.
군위의 <댐댐> 카페는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카페는 원래 댐 근처에 위치한 공간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설계되었다. 자연과의 연결로 <댐댐>은 군위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은 댐과 주변 경치가 어우러져 있어, 방문객들에게 평화롭고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관광으로 지역민들이 소득을 얻어가려는 목적도 있다. 카페는 이러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설계되었다.
카페가 생기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관광객들 보다는 지역수민들의 수다방으로 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안동 가는 길에 물멍을 즐기는 경유지가 되었다는 것이 내심 행복했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이옥이 생각났다. 물가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리움과 애틋함을 이옥이 느꼈더랬지. 아주 오래된 책이라 활자 사이사이의 글 문장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물가에서의 고요함과 그 안에서 물겅물겅 올라오는 그 감정들이, 지금 내가 물멍 하는 그 상황과 같은 것일까. 물멍의 본질이 사색인가, 자기 돌아다 봄인가 하는 여러 생각들.
안동 가다가 잠시 경유한 군위에서 물멍의 최대치를 보았다면 나는 허세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물멍이 주는 카페. 그 이상하게 설레게 했다. 각자 인생 최고의 물멍은 어디인가? 그게 바다인가, 호수인가, 이렇게 댐인가? 오늘은 어디든 물멍 따라서, 물멍이 되는 카페 한 번 가 보자. 가서 나만의 물멍을 하고 오면 어떨까 싶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든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명분이 '물멍'이었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압박을 해 본다.
책멍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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