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고택를 가다
한동안 카페에 미쳐서 무슨 일처럼 카페 투어를 했다. 이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호시탐탐 했다. 어디 갈만한 카페가 없나 두리번거리는 것이 일이 되었다. 강의하고 컨설팅하면서 전국을 몇 년간 다녔다. 요즘은 그 옛날 전성기처럼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부작사부작 출강하고 컨설팅한다. 그때도 참 카페를 많이 갔었다. 강의안 잠시 수정하거나 혹은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 하거나. 차에 앉아 있는 것보다 카페 가는 게 있어보기도 한다는 생각도 했고.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시흥으로 강의를 가는 날이었다. 운전해서 장거리 가는 것을 많이 싫어하는 탓에 어디든 대중교통이 연결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기차역에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쏘카를 타고 이동하곤 했다. 시흥은 광명역에서 내려서 쏘카 타고 들어가려다 그냥 시내버스 타고 이동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카페 어디든 점을 찍고 가자고 마음먹었다. 시흥에서 광명역까지 오면 이동거리가 경제적이었다. 그래서 간 곳이 광명 소하고택.
"할아버지가 짓고 아버지가 태어난 곳" 이 문장이 주는 힘이 훅하게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지어서"라는 문장에 확 꽂혔다.
"할아버지가 짓고 아버지가 태어난 곳" 이 문장이 주는 힘이 훅하게 들어온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지어서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지. 본인도 거기에서 나고 자랐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이런 문장 하나가 훅하고 들어와서 감히 시내버스 타고 거기를 갔다. 카페가 뭐라고 일부러 그렇게 성큼성큼 가냐 싶은 게. 어디에 꽂힌다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 신성한 거야. 그럼! 이런 자기 자찬이 별반 명분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꽂힌 것에 대한 전. 율. 은 있었다.
여기 소호 고택에서는 주문받는 사람이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귀 기울여 안 들으면 안 들리는 목소리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선을 제압하는 이 느낌은 뭐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니, 내 머리와 어깨가 앞으로 기운다. 온통 거기 주문받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하는 묘한 이 기운은 뭐지?
"자리부터 보고 오세요"
"네?"
되물었다. 아... 네, 자리 보고 오라고요. 자리 보고 왔다. 노트북 들고 글 쓰려고 왔으니 제일 구석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했다. 콩고물 라테와 가래떡 구운 것 주세요.
"진동벨 진동이 약하니 손에 꼭 쥐고 있으세요"
진동벨 소리는 정말 약했다. 서성거리다가 진동벨 소리를 듣고 음료를 받아왔다. 그 조용함이 좋다. 할아버지가 짓고 아버지가 태어난 곳. 진동벨에 쓰여 있다. 멋지다. 저 문장이 주는 느낌이 온몸으로 다 온다.
여기저기 둘러봤더니 "이 방은 부모님의 실제 신혼방이었습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여기에서 신접살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 우리들 부모의 신혼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별반 아는 게 없었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했는지 어떻게 해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는지 별반 아는 게 없더라. 맨날 듣고 자란 것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소리. 해방 전에 태어나서 해방이 후를 맞이하면서 결혼을 했을 내 부모의 인생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문득 노명우 교수의 <인생극장>이 생각났다.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던 <인생극장>은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도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아버지 병간호 하느라 정작 어머니 당신의 병은 아무도 몰랐다고. 그래서 작정하고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그 시대상을 거꾸로 올라가는 책이었다. 담담하게 그 시절을 풀었으나 사회학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었다.
한옥 카페에서 주문을 시켜두고 남의 가정의 신혼집을 보고는 찰나적으로 오만생각을 했다. 이런 맛에 고택으로 된 카페를 오나 보다. 그래서 여차하면 한옥을 카페로 공간 변신을 하나보다. 한옥에서 살지 않았지만 한옥에, 고택에 오면 뭔가 모를 기억이나 생각들이 강제 소환되는 그런 곳이다 싶다. 부모님 신혼 방이 오롯이 있는 곳. 여기는 못 들어간다고 안내하면서 주인장은 매일매일 무슨 생각을 할까.
예전에는 이런 집에서 살았나. 사실 이런 주택을 물려받은 것 자체가 축복이지. 그 축복 안에서 자손 에서의 감각이 있어서 이런 고택으로 카페를 만든다는 것. 그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물려준 어른도 축복이고, 물려받은 자손도 축복이다. 한옥카페의 맛이 제대로 난다. 군데군데 넓게 넓게 놓인 자리가 대화하기 딱 좋은 카페이다.
서까래라고 한다. 한옥의 지붕들. 그리고 한옥의 기둥들. 아파트 단지 옆에 어쩌면 우두커니 있는 카페이겠다. 사람들 심리는 참 희한하지. 내가 아파트가 아닌 한옥에 살았다면 그게 마냥 낭만이기만 할까. 여기저기 불편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네 한복판에 한옥이 카페로 바꾸어져 있으면 운치 있는 감성 공간이 된다. 그게 공간의 힘이겠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동네 아줌마 두 분, 어떤 20대 커플. 그리고 점심시간 즈음하여 동료들 같은 네 분들. 족구대회를 한다, 동호회를 한다. 그리고 동호회 가면 불륜이 난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그래 사는 것이 뭐 다 그렇지 뭐. 사는 이야기가 그렇지 뭐. 귀동냥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 이렇게 웃기지. 오만 사례를 다 풀어내는 동네 마당귀와 동네 훈수쟁이가 저기 있구나. 남들 위험하다고 하는 저분이 내 눈에는 제일 위험해 보이는데.
12시에 오픈해서 두 시간 정도 되니 공간에 사람이 제법 찼다. 사람들은 공간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카페는 그런 맛에 오나 보다. 자신의 이야기들보다는 죄다 남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시부모 이야기, 동서, 시동생 이야기 등등. 사는 이야기인데 그게 다 정겹다는 생각이 안 드네. 돈 들여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죄다 욕 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싶다. 뭐 나도 다른 사람이랑 왔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니 웃기는 했다.
한옥 고택 카페 간 것이 뭐 대단한 일은 아닌데 나는 마음이 스산할 날, 마음이 울컥울컥 한 날 카페를 간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옥 카페를 가면 그게 뭔지 모를 위안이 되는 것이다. 아, 이것도 결핍에서 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이모는 깡촌 시골에서 이런 서까래가 있는 한옥에서 살았다. 방학이 되면 아예 거기 살았다. 나는 그 시골 깡촌에 대궐 같은 (내 눈에는 대궐이었다) 그 한옥집이 좋았다. 초등학교 2 때 겨우 전기가 들어온 곳이다. 그전에는 호롱불을 켜 두고 생활을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 마당의 크기, 본채와 별채에서 주는 압도감... 그게 참 부러웠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는 절대로 못 보는 것인데 나도 이모네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느낌이 참 많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그 큰 집이 부러웠고, 그 마당이 부러웠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이모네에 가서 놀았다. 그 후에 시골집을 두고 울산시내로 이사를 가서 그때는 덜 갔다.
버스 타고 일부러 간 소하고택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오만가지 낙서를 하다가 돌아왔다. 다음 한옥카페는 또 어디로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