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에 창업한 대구 미도다방에서
“아이고, 왔어예. 차는 어때예? 잘 있다 가이소”
이렇게 풀어내는 인사가 마치 내가 예전에도 오랫동안 다녀온 찻집처럼 살갑게 인사를 했다. 친구는 여기 자주 오느냐고 묻는데, 대구까지 어떻게 자주 갈 수 있을까. 그런데 마치 어제 다녀간 손님에게 이야기하듯이 무심한 듯, 혹은 살갑게 인사를 한다. 그 아우라는 그 주인장만이 풀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한복 입은 60대말 혹은 70대 초반 여인이라니. 아닌 게 아니라 sns에 대구 미도다방 다녀왔다고 하니 한결같은 질문은 그 한복 입은 주인이 아직도 계신가요? 였다. 미도다방이라는 공간의 힘 안에 사람의 힘이 더 크다 싶다.
삼십여 년 가까이 일본에 사는 내 친구가 한국 온 날, 우리는 대구 미도다방을 가 보기로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이다. 그 친구는 일본으로 시집가서 30년을 살았다. 한국 오면 친정(김천)집 있다 가기 바쁜 친구인데 이번에는 작심하고 대구를 거닐러 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미도다방이다. 미도다방을 가서 쌍화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는 음악이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고. 공간이 촌스러운데 뭔가 애틋하다는 말을 했다. 다음에 대구 오면 여기 또 오자는 말을 했다. 쌍화차는 오천 원, 커피는 이천오백 원이었다. 쌍화차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커피 한 잔을 더 시켰는데 커피는 헤이즐럿향이 진하게 풍겼다. 헤이즐럿향의 커피는 이제는 정말로 익숙하지 않고, 내 입에는 촌스러움이 울컥 왔다. 그렇게 좋았던 그 향이 입안에서는 미안하게도 비린 냄새가 났다. 취향이 바뀌었다는 소리다. 그래, 헤이즐럿이라는 것조차도 이제는 오래된 고인 물이 되었다.
헤이즐럿 커피는 옛날에는 "있어 보이는_있어빌리티"가 있는 허세 커피였다. 그러나 이제는 허세에서 고인 물로 바뀐 시점이다. 이것도 허세이구나 싶은데 친구는 헤이즐럿 향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도다방에서 나는 나의 허세를 스스로 인지했다. 다행이다. 어디 가서 자신의 허세를 제대로 인정하겠는가. 옛 다방에서의 매력이다. 묵어서 나를 제대로 보는 것. 일본 사는 친구는 믹스 커피조차도 그리웠다고. 믹스 커피와는 또 다른 헤이즐럿 커피가 이래저래 반갑다고 한다. 사실 요즘 대형카페나 커피 잘 내리는 곳에서 헤이즐럿 이런 것은 없다. 산미가 있는 커피? 다크초크렛 커피? 이렇게 선택하게 하지, 커피에 헤이즐럿이라니... 어쩌면 헤이즐럿이 무엇인지도 모를 세대들이 있지 않을까. 여하튼 나는 이상한 비린내가 나서 내 취향이 아닌 커피가 되어버렸다.
"우리 집은 쌍화차를 잘합니다"라는 주인장의 추천이 있었기에 우리는 쌍화차 2잔을 시켰다. 그런데 친구가 부득불 헤이즐럿 커피도 같이 시키자 해서 커피까지. 쌍화차 2잔, 커피 1잔을 식탁에 두고 있는데 주인장이 와서 말을 붙였다.
"“아이고, 왔어예. 차는 어때예? 잘 있다 가이소”
미도다방에는 하얀색 보드판이 있다. 예전에는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세월 따라 보드판이다. 누군가 지금의 정치 이야기를, 사회 이야기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싶은데 그것이 말로 한계가 오면 저렇게 보드판에 써 가면서 설명하고 설득했는 듯하다. 그래, 여기는 대구의 정가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론이 만들어지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시대의 먹물들이 여기 모여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주장하는 그런 곳으로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대구 동성로 번화가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즐비하다. 거기에는 나이 든 사람이 앉아 있기가 이상하게 눈치 보이니 여기 미도다방에서 이렇게 하루를, 일상을, 머물다 가는 것이다 싶다.
20대에도 여기 와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미도다방은 1956년에 창업되었다. 이곳은 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장소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예전의 미도다방은 주로 남성 고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로, 담배를 피우며 그들만의 리그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다방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다과가 주요 메뉴였고, 정치 여론을 잡는 곳이었다. 최근 미도다방은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접목한 분위기로 퓨전 다방이 되었다고 할까. SNS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소위 빈티지한 분위기의 다방으로 대구 오면 찾아갈 곳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인테리어와 메뉴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커피뿐만 아니라 디저트와 다양한 음료를 제공한다.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주는 옛날과자, 일명 센베이는 예전부터 오는 전통일지도 모르겠다.
어른 되어 미도다방을 세 번 가 봤다. 처음에는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소위 지역 어른들 모시고 우르르 갔다. 두 번째는 또 오래된 다방에 대한 향수를 느껴보자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또 갔다. 소위 빈티지 카페 투어. 세 번째는 친구에게 가 보자고 꼬셔서 갔다. 그 세 번째가 일본 친구와 온 곳이다. 결국 세 번째 방문만 수다 떨러 갔고 나머지 두 번은 뭔가 옛 것의 향수나 도시재생 속에서 살아남은 무엇을 억지로, 굳이 느끼기 위하여 간 셈이다. 일하러 간 것이지. 처음과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까지 오래된 공간에 대한 감성을 느끼겠다는 우격다짐의 목적이 있었다치자. 그러나 공간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것은 사람이었다. 한복 입은 주인장의 품는 아우라가 사실 대단했다.
한 가지 일을 1956 년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사실 모르겠다. 처음부터 여기 주인장이 계속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얼핏 계산하니 70년이 된 다방이다. 그러면 이 주인장은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고, 몇 살부터 이 다방을 운영했을까, 그런 상상을 잠시 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겠냐마는 뭐든 어떤 인연으로 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겠지. 요즘 '꾸준함'에 대한 생각이 많다. 살면서 무엇을 그렇게 진심으로 꾸준히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 40년 동안 같은 직장을 다니다 이제 정년을 기다리는 친구도 있고, 직장 생활 몇 년 후 사업으로 자신으로 경제를 꾸려 온 사람도 있다. 무엇이 맞다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나 각각의 인생들에게 건배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미도 다방의 꾸준함에 뭔가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작정하고, 마음먹고 갔던 미도다방에서 친구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면서 공간의 빈티지만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 푸르른 젊은 날의 빈티지도 보고 왔다면 남들이 웃을까. 시간이 흐르면 낡고 오래된 것이 베스트가 되는 빈티지 패션처럼 나도, 친구도 시간이 흐르면서 빈티지의 최고가 되어갈 수 있을까. 대구 진골목의 오래된 미도다방에서 살아감과 나이듦을 보고 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게 빈티지가 빈티지*되는 날을 기다린다.
*빈티지 _ 오래 되고 낡은 뜻이지만 최고, best라느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