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블룸의 택소노미와, 도야마 시게이코의 비행기 형 학습 관점에서
안녕하세요? 방승천입니다.
이제 좀 가을 같은 선선함이 느껴지네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이유가 날씨 때문이었나 봅니다 :)
오늘은 가을과 어울리는 '공부'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교육학에서 다루는 프레임워크 중에는
벤자민 블룸(Benjamin Bloom)의 교육목표 분류(Bloom's Taxonomy)라는 것이 있습니다.
1956년, 시카고대학 교육심리학자 블룸은 학습목표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각 영역에 위계를 두어 학습의 단계적 목표를 설명했는데요.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지적 학습 단계입니다.
그는 학습을 사고력과 인지력 수준에 맞게 여섯 단계로 설계하고 학습해야
학습의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 암기 → 2. 이해 → 3. 적용 → 4. 분석 → 5. 평가 → 6. 창조
어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어떤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개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단 적용해봐야 하고,
어떤 개념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석이 완료되어야 하죠.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단계가 전부 필요합니다.
피라미드의 가장 하단은 기억(Remember)하고 이해(Understand)하는 단계입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영역이죠. 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온 학습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 과정의 대부분은 이 두 가지를 숙달하는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이 두 단계는 물론 매우 중요합니다. 초중고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반복하는 건 다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두 단계가 저차원적 사고로도 충분한 학습 단계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울 때 앞의 두 단계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암기하고 이해하는 준비를 마쳤다면 이제는 더 상위 단계의 학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상위 단계 학습들이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해 체화하는 '진짜 공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상단의 적용(Apply)하고, 분석(Analyze)하고,
평가(Evaluate)하고, 창조(Create)하는 학습 단계들은 더 고차원적 사고과정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적용을 하기 위해서는 적용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적용의 대상도 다양할 뿐더러, 대상에 따라 적용의 방법도 다양하겠죠.
때문에 적용, 분석, 평가, 창조 등의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은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면밀히 평가해야 하기에, 더 고차원적인 평가 역량이 요구됩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초중고 교육에서
이 고차원적 학습을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평가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고차원적 사고 과정과 결과의 평가는 공정성 이슈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평가 민감도"가 매우 큰 나라죠.
그런 연유로 우리의 초중고 교육시스템은 지금도
이해와 암기를 반복해 가르치며 평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베스트셀러 『생각의 도약』으로 잘 알려진 사고학의 거장 도야마 시게히코는
인간의 학습과 사고에는 글라이더형과 비행기형 능력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비행기는 엔진이 있어 스스로 이륙할 수 있지만, 글라이더는 엔진이 없어
높은 곳에서 날려주어야만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비유입니다.
두뇌 발달이 가장 빠른 시기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주로 글라이더가 되는 훈련입니다.
학교는 순종적 태도를 존중하죠. 멋대로 날아오르는 것은 규율 위반입니다.
글라이더형 교육에서 아이들은 창조성을 잃어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혼자 힘으로 지식을 얻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교과서가 이끄는 대로 공부합니다.
도야마 시게히코는 학교를 글라이더형 인간을 양성하는 훈련소에 비유합니다.
이러한 학교 교육환경에서 우등생은 우수한 '글라이더'일 뿐,
스스로 비행할 수 있는 '비행기'는 아니라는 거죠.
더불어, 글라이더로 가득 찬 세상에선 글라이더가 자신의 결점을 망각하기도 합니다.
즉,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날려주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력으로 날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글라이더 형 학습은 수동적으로 지식을 얻는 유형이고,
비행기 형 학습은 능동적으로 사물을 발견하고 발명하는 유형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스스로 날아오르는 비행기형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초중고 12년간 가장 평가가 용이한 하위 두 단계
이해와 암기를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우리의 입시체계는
향후 시점인 대학이나 사회생활에 학습의 나머지 단계를 이양하고 위임하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2025년 기준 76%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진학하면 공부가 달라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성인 남자가 군대에 갑니다.
이 시스템이 군대에 가면 달라질까요?
취업하게 되면 기업에 속해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기업에서는 좀 다를까요?
우리사회의 교육 모델은 공장형 교육모델(Factory Model of Education)에 오랫동안 비교되어 왔습니다.
어쩌면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러한 교육 모델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결정해 무언가를 공부해본 마지막 기억은 언제인가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하며 성장한 우리나라는
그 산업의 일손이자 일꾼이 되어줄 다수의 인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 인력들의 모습은 바로 "순응형 인재",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일해주는 사람들이었죠.
'아주 뛰어난' 한 사람의 인재보다는
'어느 정도 우수한' 다수의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그 우수함의 기준이 되는 명확한 준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우수하다는 준거가 되는 학벌과 점수는
학습의 과정보다는 학습의 결과가 중요한 사회적 맥락을 만들었고,
그 결과 입시 점수와 학벌 자체가 모두에게 뚜렷한 목적이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학생들에게
"공부를(학습을) 잘한다"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상위 교육시스템인 대학과 사회로 이동시킵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일까요?
블룸의 택소노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학습을 잘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의 6분의 2만큼 갖춰져 있을 뿐입니다.
암기와 이해로 더 잘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을 뿐인 것이고요.
진짜 공부를 잘하려면 12년간 잘 암기하고 이해한 많은 것들을
다양한 현실에 적용해보고, 분석해보고, 평가해보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그 다음 단계의 학습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즉, 학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좀 더 어울리는 정확한 표현은
"보다 본격적인 고차원적 사고가 요구되는 상위 학습 단계를 잘 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입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공부를 잘한다"가 아닌
"공부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다"에 가깝죠. 이것이 바로 "수학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블룸의 택소노미가 알려주듯 공부는 단계가 있고, 오래 걸리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알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창조할 수 있어야 공부를 (완결적으로) 잘 수행한 셈입니다.
때문에 학습자 본인의 학습 철학과 관점이 중요합니다.
내게 공부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목적인지, 내게 유효한 학습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1호 기록학자이신 김익한 교수는
학습은 학(學)과 습(習)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학(學)은 배우는 것, 즉 입력(Input)입니다.
습(習)은 익히는 것, 즉 출력(Output)입니다.
입력에서 끝나면 아직 학습이 끝난 게 아닙니다.
출력까지 해봐야, 즉 배우고 익혀야 학습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읽었다면, 들었다면, 이번엔 쓰고 말해봐야 내 것이 됩니다.
내 것이 된다는 건 관점이 자리 잡고 늘 떠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해와 암기라고 볼 수 있죠. 이게 전제되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편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제게 학습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수단입니다.
그러니 어제 몰랐던 걸 오늘 알게 된다면 그만큼 나아지는 거죠.
그래서 하루에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나아지려면 부족함을 무언가를 더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아지려면 부족함을 메우는 행위, 즉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 이것이 학습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학습 방식 또한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큰 목표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습득한 지식을 일상에서 실제로 활용해보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특징을
'급우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는 친절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에 대해 설명해보면
자신이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잘 모르는지 명확히 알게 됩니다.
즉,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행위(즉, 배워서 남주기)는
메타인지를 높이고, 지적 겸손을 갖게 합니다.
그 간격을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빠르게 그 간격을 메우는
학습 민첩성은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더불어 스스로 모르는 것을 보완해 타인에게 베푸는
'배워서 남주기'는 자기에게도 좋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지식경제 시대에서 평생 학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 입니다.
수동적인 이해와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에게 '스스로 학습한다'는 말은 추상적입니다.
글라이더에게 갑자기 날아오르라고 강요하는 격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적용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창조하는 고차원적 사고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해내야 하는 비행기형 사고의 영역입니다.
행위의 성격상 남이 도와주기도, 평가하기도 어렵죠.
지식의 반감기가 더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미래에는
과거 배운 그대로의 지식 그 자체는 효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즉, 공부해야만 하는 학습의 동기는 충분합니다.
생성형 AI, 온라인 강의, 도서관, 수많은 전문가들과 책들...
우리 주변의 공부할 '꺼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해졌습니다.
즉, 공부해야 할 학습의 환경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배운 것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고,
그 적용의 결과를 분석하고, 영향력을 평가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진짜 공부'를
스스로 결정해 끝까지 해내는 것입니다.
공부에 한 가지 왕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세상에서 말하는 공부(이해와 암기)를 아주 특출나게 잘 해온 사람도 아니구요.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진짜 공부'의 완성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그릇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자성어 '대기만성'의 의미처럼요.
하지만 공부에 대한 생각은 점점 더 분명해 집니다.
살아보니 인생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what의 문제보다
자신만의 답이 필요한 how의 문제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정오답, 빈칸 채우기, 다지선다 등은 학창시절에 이미 끝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정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1단계에서 6단계까지 완결적인 학습에도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것처럼요.
인생이 요구하는 답이 주관식이라면 목적과 방식이 결부된 명확한 의견을 담아야 하겠죠.
글라이더가 아닌 비행기가 되기 위해서 꼭 학교에 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더 빨리 배울 수 있겠지만요.
진짜 공부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입니다.
스스로 결정해, 오래 공부의 단계를 밟아가는 여정을 거쳐야
미래 언젠가는 삶이 내게 답하라고 요구하는 질문들에
타인의 답, 세상의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적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청명한 날씨에 집중하기 좋은 일요일입니다.
즐겁게 공부하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