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남미, 그 후로 3년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보기 싫은 상사에게 사표를 날리고, 쿨하게 짐을 싸고 세계 여행을 떠나는 거다.
사표에는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는지, 얼마나 이 조직이 엉망이었는지, 그러므로 나는 떠나겠노라며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배낭을 메고 떠나는 '상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얼떨결에 사표를 내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평범한 나는 사표를 쓸 때 상사가 얼마나 나에게 모욕감을 줬는지, 조직이 얼마나 경직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 질지, 스스로는 막연하게나마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이뤄질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막말로 사표를 쓴 후 돌고 돌아 같은 계열로 돌아오게 될지 누가 알까.
따라서 나는 '쿨 내'가 진동하기는커녕 아주 절절했다. 사표를 쓰고 남미 여행을 무작정 떠났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첫 회사에서 보낸 내 20대 청춘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다.
마지막 근무 후, 배낭을 메고 20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견디고 페루와 볼리비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방문하는 도시들마다 엽서를 사서 카페에 앉아 팀원들과 지인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돌이켜 생각하면 첫 회사를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입사를 했던 동료, 윗사람에게만 잘해서 괜히 얄미웠던 차장님,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간미가 있었던 부장님, 그리고 칭찬에 인색했던 자존심이 센 팀장님. 짧은 남미 여행이었지만 짬을 내어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마지막을 고했다.
쿨한 드라마 속 퇴사 장면과 현실 속 나의 퇴사 장면은 사뭇 달랐다. 퇴사 후, 내가 주연인 드라마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간혹 그것이 끝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 그 이후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