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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Jan 09. 2018

방황한 선생님이 좋다

뒤늦은 선택을 한 그녀에게

그녀는 여전히 밝았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구직활동을 해야 했던 마지막 학기의 나와, 갓 입학 해 첫 학기를 보냈던 그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녀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친구다.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그녀의 과거 이력이 특유의 자유로운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기보다 낯을 가리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나 조직에 융화되기 위해 애써 친절을 베풀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 그녀와 나는 내가 논문을 쓰고, 구직을 하고, 졸업을 한 후 지금 회사에서 승진을 할 때까지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음악을 전공하고 국제정치학 석사를 받은 그녀의 다음 선택이 궁금했다. 그녀는 학부 때 음악을 전공했지만 유학을 갈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 속에 있었고, 스스로가 선택하기보다 선택당할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들 때문에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나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학부 전공과, 첫 직장과, 석사 공부와, 현재 직장에서의 업무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험은 나도 마찬가지니까. 연결되지 않는 경험들이 못내 아쉽고 후회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연결되지 않는 이 경험들 덕분에 보다 더 단단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잘 지내고 있었어? 요즘 구직 활동하고 있는 거야?"


"네, 언니. 근데 저... 다시 임용고시 준비하기로 했어요. 놀랍죠" 



음악 선생님이 되기 위해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할 거라는 그녀는 다소 난감하지만 역시나 특유의 밝은 표정이었다. 음대를 나와, 레슨 선생님을 하다가,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받지 않고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유엔으로 인턴까지 다녀왔다. 그녀는 인턴십을 끝내고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 국내 회사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정직원인 또래들을 보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고. 그래서 우울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과 한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고. 그러다 도망치듯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친척 교회에서 봉사와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고. 그리고 오랜 고민의 결론은, 고향에서 1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첫 회사 출근 3일 즈음되던 때에 회사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차릴 직관은 있었으나 하고 싶은 일을 실행에 옮길 자금력과 위험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매기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던 대다수의 일은 사실 돈이 되지 않거나 그 일을 하기 위한 자금 투자가 필요했다. 예술을 전공한 동생 덕분에 나는 장녀로서 대외적인 명성이 있고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업종은 내 선택지에서 지워졌다. 동시통역사도 고려했지만 부산에서 서울로 짐을 싸고 올라가 1년 간 고시원 생활을 하며 시험을 준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로 전환을 위한 모든 비용은 첫 회사에서 번 저축으로 충당을 하고,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러니 꿈과 이성을 조화시킨 내 최종 선택지는 전액 장학금을 주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음악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했지만 진로 전환을 꿈꾸던 그녀 눈앞에 펼쳐진 선택지 또한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지금 선택을 힘껏 응원하고 축복한다. 그녀가 학부 졸업 후 첫 임용고시에 붙었더라면 지금쯤 결혼해서 적지 않은 경력을 가진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녀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꿈을 타협해야 했던 많은 보통 사람들의 설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단조로운 교사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는 권태로운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겠다는 본인의 결정이 황당하지 않냐고 웃는 그녀에게 말했다. 돌고 돌아 간 너의 경험이 언젠가 괜찮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었을 거라고. 그러니 부디 그만큼 더 좋은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언젠가 아이를 가진다면, 나는 부모님의 권유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선택한 선생님들보다, 실컷 방황하고 도전하고 고민하다 돌고 돌아온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다.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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