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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Feb 06. 2018

오랜만의 만남

변한 것과 간직할 것

마지막으로 A를 만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10년 전 처음 만난 A는 저렴한 옷 여러 벌을 사기보다는 백화점에서 핏에 딱 맞는 옷 한 벌을 사서 입는 것을 선호하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A는 학부 졸업 후 공무원 준비를 하다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와중, 우리가 만났던 직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보다 3살 많은 언니였던 A도 취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었고, 나도 해외에 있는 대기업 지사에서 반년 동안의 인턴 생활을 하고 돌아온 새내기 사원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친해졌었다.  

공부를 위해 사표를 내고 지금 직장에 자리를 잡기까지 6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첫 회사를 십여 년 가까이 다녔던 A는 회사에 대한 애증이 유별났었다. 한바탕 욕을 내뱉고 나서는 그래도 이런 회사, 이런 부서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남부럽지 않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A가 회사를 오래 다닐 것을 예감했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내게 쏟아내던 회사 욕은 나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으니까. 

1주일 정도의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곧바로 이어진 국내 출장이었다. 집에 온 김에 나는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었고, 휴일에 만날 사람들 얼굴을 하나둘 떠올려 보다가 A가 생각났다. 내가 공부를 하러 간 사이 A는 결혼을 했고 애증의 첫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카페에 앉아 캐모마일 차를 한잔 시켜 놓고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던 내 이름을 부르는 A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갓난아이를 안고 나타난 A의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A의 세계는 아이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차선이었다. 공통된 장소와 업무라는 교차점에서 발을 디디고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을 추구하던 우리는, 어느새 추구하는 삶의 방향뿐만이 아니라 발을 디디고 선 공통된 장소에서 이탈한 지 오래였다. 때로는 이렇게 변해 가는 여성 친구들의 삶을 공감할 수 없어 한없이 외롭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개인의 삶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세계를 내가 먼저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세계에서 A의 세계를 등지고 있다면, 무관심하다면, 나를 먼저 바라봐 주지 않아 서운해한다면, 달라져 버린 우리의 삶을 이을 최소한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의 관계는 내가 먼저 발을 뗐던 그 시점에서 인연은 끊어져야 했다. 

업무에 치여 스트레스받아하던,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아 예민해하던, 타인의 삶과의 비교에서 때론 아파하던 A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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