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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Feb 14. 2018

그럼에도 집으로

귀성길 전쟁에 뛰어든지 오래되지 않았다. 집을 떠나 산 것이 최근 일도 아니지만,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학생이었으니 시간을 다소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었고, 외국에 있었을 적에는 당연히 귀성길 전쟁은 남의 일이었다. 서울에 터를 잡고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일 년에 두 번, 나는 차표 획득 전쟁에 뛰어들었다. 새벽 6시에 KTX 표가 풀리기를 기다리기 위해 6시 전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초시계까지 동원하여 정확히 6시 0분 0초에 클릭을 하기까지의 긴장감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자 나는 아예 심야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표를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유독 어려운가 싶었는데, 부산까지 가기 위해서는 KTX 중간 지점을 논스톱으로 앉아 가야 하기에 그만큼 표가 많이 없기 때문이었다. 집이 대전이던 동료는 내가 왜 매번 기차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은 심야버스 맨 앞자리에 탔었는데 기사님은 대형버스 운전이 다소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베터랑 기사에게 길 확인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고, 졸음을 내 쫓기 위해 운행 도중 차를 멈추고 말 그대로 달빛 아래 체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내가 깨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아가씨, 앞에 커피 한 잔만 타 줄래요"라며 부탁을 해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밤을 새워서 운전하기란 여간 보통 일이 아니라서 아저씨가 간혹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니, 나는 오죽하면 나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했을까 싶은 기사님이 안쓰럽다가도 혹여라도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에 애꿎은 달을 바라보며 제발 무사히 집까지 도착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되뇌었다. 새벽 3,4시에 빨간 자동차 불빛으로 가득 찬 고속도로를 보며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타지 생활을 하는 것도 외로운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 뒤 섞인 혼자인 내 모습에 왠지 마음이 허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떡국을 끓여 놓았다며 어서 집으로 오라 했고, 그렇게 표를 사기 어려우면 그냥 부산 집에서  살면 안 되냐며 묻기도 했다.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귀성길 전쟁에 참전하는 이유도 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모의 기다림 때문은 아닐까. 며칠 전 백화점에 우연히 들렀다가 1층 매대에 양말을 파는 것을 보았다.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자취집에 돌아왔는데 괜히 마음에 밟혔다. 부산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다시 백화점에 들렀고 엄마와 아빠 양말 세트 두 개를 사서 돌아왔다. 두 상자는 부산으로 가는 짐 가방에 잘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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