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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른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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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Feb 28. 2018

같은 공간에서

주말 저녁, 나는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모임을 한다던가 분위기 좋은 펍에서 술을 기울이는 것보다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금요일 밤의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기보다 집에서 따뜻한 밥을 지어먹고 가족, 혹은 가까운 이들과 대화를 하는 편이 즐겁다. 가끔 에너지 넘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나는 방전이 빨리 되는 낡은 배터리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충전을 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빨리 닳는다. 그리고 가끔 혹은 자주 여러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처음 마카오로 교환학생을 갔을 적에 중국인 친구들과 홍콩 여행을 했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당시 한국어 여행 가이드 책을 들고 갔었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새로웠고 시도해 보고 싶었고 따지는 것도 없었다. 홍콩의 높은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들리는 광둥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언어들 사이로 바쁘게 걸어가는 각양 각국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젠가 홍콩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이었던 우리는 분수가 화려했던 식민지 풍 고급 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감히 들어가 볼 생각조차 못했다. 다만 그 호텔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이곳으로 출장을 오거나 손님으로 다시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근 몇 년 간 연이은 해외 출장으로 여러 호텔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고시원 크기의 서울 원룸에서 자취를 하다 출장을 가면 해외 최고급 호텔들을 쓰기 일쑤였으니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다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오성급 호텔을 이용하는 출장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오늘, 해운대 밤거리를 걸으며 문득 영화제에 빠져 보냈던 내 20대 초반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영화제에서 일을 했었지만 현실적인 제약을 되뇌며 직업으로 삼기에 두려워하다 결국에는 그 망설임조차 내려놓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제를 하면 톱스타들만 묵는 호텔이라던 이곳을 쓱 바라보고는 해운대 밤거리를 거닐곤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영화제, 영상 박람회 등 다양한 영화 관련 장소를 찾아다니며 일을 하고 때론 영화를 보고 또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운대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서울의 동료, 상사들과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때의 내 모습을 알아 봐주거나 추억을 공유할 사람은 없었다. 홍콩에서 찍었던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리며 언젠가 손님으로 당당히 찾아갈 것이라고 했던 어린 어른의 다짐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때를 떠 올리면 나는 여러 소소한 다짐들을 이룬 어른이 되었는데, 변한 것이 없다면 나는 여전히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방전이 빨리 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공간에서 공감할 사람들이 지금 곁에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프다고 느끼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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