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시절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었다. 그 이후 나는 운전대를 잡아 본 적이 없다. 차를 살 의도 없이 굳이 면허증을 따기 위해 시험을 보았었고 합격을 했던 것이다. 언젠가 운전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시험 준비를 할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그러니 일이 몰리지 않는 신입 사원일 때, 함께 면허증을 한번 따 보자고 파이팅 외쳐주는 동네 친구가 곁에 있을 때 시간을 내기로 했었다. 면허증을 처음 받아 들고 무심코 바라보다, 면허증 찍힌 날짜가 보였다. 2018년에서 2019년. 면허증 갱신 날짜였다.
중학생 시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의 주인공들이 교실에서 노트북을 쓰던 풍경은 생경하기만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약속 시간을 정해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국에서 걸려오는 부모님의 비싼 국제전화를 받곤 했었다. 색색깔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여행지에서 길을 찾곤 했었다.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개인 업무를 보고, 길을 걸으면서도 실시간 화상 통화를 하고, 구글맵을 다운로드해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은 돌이켜보면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상의 풍경들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내 생일이 4월인 이유도 있지만, 두꺼운 코트로 감싸 무겁기만 했던 몸을 활짝 필 수 있어서, 길어진 해 덕분에 하루를 더 길게 만끽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시작'을 한다는 활기찬 기운이 좋아서 봄을 좋아한다. 그리고 봄을 가장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나 자랑하던, 4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 가진 4가지 보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내게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지구인들에게 그런 보기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두터운 코트와 패딩을 장롱 안에 넣으면서 얇은 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파스텔톤 슬립온을 신고 황사마스크를 쓰고 밖을 나섰다. 마스크가 익숙하지 않아 코를 내밀고 입만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할머니, 언젠가 연예인 마스크라는 이름으로 팔던 검정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청년, 그리고 혹여나 잘못 썼을까 마스크를 다시 한번 코에 단단히 고정시킨 내가 뒤엉커 걸어간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니 회색 하늘이 펼쳐져 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면허증 갱신 날짜인 2018년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