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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한생글 Sep 15. 2023

거절당한 경험, 거절할 용기

심한 곱슬머리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매직펌을 해서 머리카락을 쭉쭉 펴왔다. 다섯 살 정도의 사진을 보면 파마를 한 것처럼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했을 정도였다.


10여 년간을 정기적으로 매직펌을 해오다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는 매직셋팅펌과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붉은빛 나는 갈색으로도 해봤다가 진한 초콜릿색으로도 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하고, 무작정 길러보기도 했다.


곱슬머리라는 숙명으로 앞머리를 내면 금방 부스스해져, 앞머리 길러 넘긴 머리를 고수하는 바람에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앞머리를 내고 싶다고 하면 미용사 언니들은 늘 말렸다.)


미용실을 다녀온 지 몇 달이 흘러 자라나온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어느 날, 비싼 비용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미용실로 향했다. 익숙하게 ‘위에는 볼륨매직 해주시고, 아래는 C컬 넣어주세요.’ 했다.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한참 들춰보던 미용사는 머리를 감아봐야 머리카락의 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니, 샴푸를 하고 나서는 지금도 너무 상해있어 파마를 하면 머리카락이 녹을 정도라고 했다. 머리 상했다는 말은 늘 들으며 시술을 해와서 그 말에 익숙했던 나는 그래도 매직세팅을 해달라고 했다. 그냥 쭉쭉 피기만 하는 매직은 너무 밋밋하고, 금방 곱슬머리가 나오고 나면 촌스러워서 꼭 아래쪽에 컬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용사도 완강했다. 해주고 싶어도 안된단다. 나중에 상한 머리카락을 귀 밑까지 다 잘라내고 덜 상한 머리카락에 컬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훨씬 더 비싼 매직세팅을 거절당하고, 뿌리 쪽만 겨우 매직을 하고 나왔다. 큰맘 먹고 간 미용실에서 거절을 당할 정도로 머리가 많이 상해있었다.


그렇게 20년을 부지런히 미용실을 가고, 성인이 되어서는 화장을 하고, 늘 반복되는 다이어트 결심과 실패, 내 취향보다는 직장에서 튀지 않게 입을 만한 옷인지가 기준이 되고, 내 마음보다 타인의 감정과 반응에 민감해야 했던 어느 날, 꾸며야 하는 모든 것에 질려버렸다.


머리카락도 곱슬로 태어난 그대로, 화장기 하나도 없는 얼굴,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 살이 좀 오른 모습, 일부러 한쪽이 한쪽을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고도 수평적인 인간관계, 감정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 그런 것들이 일상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계속해서 뜨거운 열을 가해 들들 볶고, 두피가 따가운 염색약으로 색을 입히다가 심하게 손상된 머리카락처럼, 계속해서 상처받고, 나를 포장하고, 채찍질하던 마음도 더 이상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상해버린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을 스스로 거절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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