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던지는 질문 "비극은 왜 찾아오는가"
“자기 인생에서 한 단계가 끝났을 때를 알아야 해. 이미 끝나버린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다음 단계의 행복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거든."
<다섯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저, 321P
가슴에 작가의 꿈을 품고 있던 젊은이는 그날 밤 "꿈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지사장이 되었고 다음날 미국으로 건너가 본사 최고경영진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음반업계에서 승승장구할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자 그는 글에 대한 열망은 "원할 때 언제든 노랫말을 쓰고 가끔은 신문 칼럼 등을 쓰면서 잠재울 수 있을 터"라며 스스로 달랬다.
꿈에 그리던 다음 날. 그는 회사 사장의 전화를 받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무슨 이유인지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 이후 2년 동안 음반업계에서 일자리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책 <연금술사>를 쓴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얘기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다섯번째 산>은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를 다룬다. 1996년에 나온 책이지만 한동안 절판됐다가 지난해 다시 발간됐다.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야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인 기원전 800년대를 살았던 인물로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그의 행적이 등장한다.
엘리야는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마냥 하느님의 선택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인물이었다. 자신이 왕에게 전달한 예언 때문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여전히 하느님의 전령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자신의 운명을 오롯이 신에게 위탁한 것이다. 하지만 신은 오히려 그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는 등 거칠게 그를 시험한다.
엘리야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현실을 직시한다. 더 이상 하느님의 예시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기로 결심한다.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대신 망명지 아크바르(기원전 페니키아의 도시 사렙타를 지칭)를 재건하는 리더로 거듭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의 뜻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던 예언자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운명을 선택하자 비로소 하느님은 그를 인정하고 더 큰 곳에 쓰이도록 인도한다.
코엘료는 <다섯번째 산> 서두에 쓴 '작가의 말'에서 잘 나가던 음반회사 임원에서 하루아침에 잘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이 책의 집필을 마쳤을 때 당시 일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인생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회사에서 해고되고 그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친 자신의 운명을 떠올린 것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비극에 맞닥뜨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소설을 읽고 작가가 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찾아내 구체적인 문장으로 옮기긴 쉽지 않다. 하지만 코엘료는 책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적어놓곤 한다. 코엘료를 대표하는 책 <연금술사>에서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구절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란 문장이다. 작가 스스로도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라고 소개하며 이 문장을 인용했다.
<다섯번째 산>에서도 비슷한 구절을 만났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인생을 살며 겪은 예기치 못한 불행 앞에서 그가 얻은 깨달음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너무나 확신했기에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는 의심과 패배와 망설임의 순간으로부터 달아났다. 하지만 자비로운 하느님은 그를 피할 수 없는 심연으로 인도하셨고,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다.
<다섯번째 산> 280P
코엘료가 음반 회사에서 기대했던 대로 승승장구했더라면 분명 브라질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로서 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만큼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긴 인생을 살면서 마냥 비극적인 상황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당장의 고통 앞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헤아리기란 정말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이 지나간 뒤에도 자꾸만 과거를 뒤돌아보고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might have been)'을 읊조리는지 모르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결국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뒤돌아보지 않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다음 단계가 비록 초라하고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그 뒤에 또 무엇이 올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자꾸 한숨 쉬고 뒤돌아보려는 고개를 다잡고 똑바로 앞을 보라고 다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