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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앤미 Jan 10. 2024

1인자 없는 또리의 하루

엄마 보고 싶어요

  1인자가 4인자와 함께 여행을 갔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여행을 갔다라는 뜻이다. 아빠 미안...). 또리를 가장 심란하게 하는 것은 '캐리어'다. 캐리어가 꺼내져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여행을 간다는 뜻이고, 그 여행 가는 것이 1인자면 또리에게는 그야말로 절망이기 때문이다. 캐리어가 꺼내지는 순간부터 또리는 캐리어 주위를 맴돌며 심란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엄마가 여행가는 건 아니지...?' 라는 표정으로.

  또리야, 슬프게도 맞아... 엄마가 캐리어를 끌고 여행 가는 순간에 또리는 마중나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를 두고 가다니, 나 삐졌어' 라는 의미다.


  갑자기 예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와 아빠는 여행가고, 동생은 군대를 가서 나 홀로 또리를 보살폈을 때의 이야기다. 1인자가 없어서 처음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금세 2인자와 함께하는 시간에 적응했다. 그 한 달 동안은 내가 (임시) 1인자였다.

  엄마가 드디어 돌아왔다! 또리가 엄마를 얼마나 반길지 너무 궁금해서 그날은 집에서 엄마의 귀국을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또리가 엄마를 본체만체하는 것이다. 자기를 두고 한 달 동안 여행 간 엄마에게 단단히 삐진 것이다. 엄마랑 나 모두 예상치 못한 또리의 반응에 말을 잃었다. 1인자 말로는 삐진 또리가 다시 엄마를 1인자로 맞이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고 한다. 나의 일주일 천하 시대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강아지도 삐질 수 있다는 것을...


1인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쏙 안기는 또리. 일주일 천하 시대의 모습.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또리는 엄마가 캐리어를 끌고 여행 가는 순간에 마중 나가지 않았다. 삐졌다는 뜻이다.

  엄마가 외가댁에 있어 하루 정도만 집을 비워도, 또리는 말 그래도 망부석이 된다. 금식을 선언하며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정말 가.만.히 있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오면 그때부터 활기를 되찾는다. 1인자의 여행 기간 동안 또리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근데 왠걸? 하루정도는 힘이 없었지만 두번째 날부터 잘 먹고 마시며 나름 잘 살고 있다. 캐리어가 꺼내지는 순간부터 알았나보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을. 이것이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인가.


  아침에 물을 새로 갈아주고 밥은 아침과 저녁, 하루에 2번 준다. 산책은 2시쯤, 제일 따뜻할 때 한다. 항문과 피부가 좋지 않아 아침과 저녁 총 2번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다. 약 발라주는 것은 1인자만 할 수 있는 행동이어서 2일째까지는 못 건드리게 했지만 3일째부터는 허락해 주고 있다. 참 다행이다.

  잘 먹고 마셔서 참 다행이지만, 잠 잘때는 확실히 다르다. 원래대로라면 1인자가 있는 안방 침대 옆에서 자려고 하지만 엄마가 없는 날부터 다른 곳에서 자고 있다. 안방 침대 옆, 부엌 의자 안 구석 공간, 거실 티비 앞 공간이 또리만의 공간들인데 1인자가 없는 날부터 현관에 가까운 부엌 의자 안 구석 공간에서 잠을 자고 있다. 마치 잠 자는 순간까지도 엄마를 기다리는 것 같다. 텐션도 약간 떨어졌다. 산책 갈 때는 신나하지만 집 안에서의 텐션은 확실히 떨어진게 느껴진다. 2인자와 3인자가 둘 다 몸살 감기가 심하게 걸린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또리만의 공간들. 왼쪽부터 부엌 의자 안 구석 공간, 안방 침대 옆, 거실 티비 앞. 위 공간들에 있을 때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1인자 없는 또리의 텐션 떨어진 하루를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그동안 또리를 돌보는 행동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미룬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더 적극적으로 또리를 보살피지 못한 미안함이 밀려온다.

  노견은 챙길 것이 많다. 매일 얼마나 먹고 마시고 싸고, 컨디션은 어떤지,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몸살이 걸려 2-3일 동안 아픈 데는 없는지 잘 살피지 못했더니 그새 사타구니 피부 쪽이 안 좋아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발견한 날, 너무 미안해서 연고를 발라주면서 '미안해 또리야'를 연거푸 말했다.

  산책에 대한 의무감도 달라졌다. 사정이 생기면 엄마한테 또리 산책을 가볍게 미루곤 했다. 하지만 엄마 없는 지금은 아파도 해야 한다. 1인자 없는 또리가 산책까지 없으면 더 우울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산책은 무조건 해야한다. 내가 아프더라도 또리는 무조건 돌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1인자가 이런 책임감으로 또리를 키웠을 생각 하니까 미안함이 다시 밀려온다.


  1인자 없는 또리가 슬퍼한다는 것은 1인자가 그동안 많은 것을 도맡고 있기 때문 아닐까. 내일 엄마 아빠가 드디어 여행에서 돌아온다. 다짐을 해본다. 1인자가 여행에서 돌아오더라도 또리의 노후를 1인자 못지 않게 잘 책임질 것이라고.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내일 또리가 엄마에게 삐질 것인지 미친듯이 반겨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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