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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Aug 23. 2023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불안을 극복하는 법, 두 번째.

예전에는 자아(自我)를 찾아서 인도로 여행을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매체에서는 인도 여행과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졌다. 그다음은 자아가 아이슬란드로 이동했고, 지금은 어디로 자아를 찾으러 가야 할까? 인도에 가면 나의 자아가 있을까?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면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 자아는 인도에도 아이슬란드에도 없다. 길에서 주울 수도 없고, 마켓에서 구입할 수도 없다. 자아는 바로 여러분의 내면 속에 있다. 사람들이 자아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 건 낯선 공간에서 마주한 자신의 모습,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이방인으로 섞여있을 때 생경한 경험들이 자아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자아에도 새로운 색깔이 입혀지는 순간이 있었다. 중학생 때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과 개인 면담이 있었는데 하루에 두세 명씩 면담을 진행했고, 며칠이 지나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은 나의 인적 사항이 담긴 서류를 보며 학교 생활은 어떤지,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등 궁금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물어보셨다. 그때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너 참 낙천적이구나."

그 말에 나는 한순간에 낙천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때에 실제로 낙천적인 성격이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스스로를 낙천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자아가 형성되는 예민한 청소년기에 누군가의 긍정적인 평가는 나의 자아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이후로도 나의 자아에는 여러 색깔들이 덧입혀졌다. 나무가 사계절을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앙상한 가지에 초록빛 새싹이 돋고, 짙은 녹색빛으로 물들었다가 점점 노란빛으로 여물고, 붉은빛도 내었다가 다시 또 앙상한 가지만 남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아를 아름다운 빛으로 채우던 중 아버지의 부재가 나의 자아를 온통 검은빛으로 물들였다. 


불안하고 근심으로 가득한 검디 검은빛의 자아가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자아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면의 공간도 정리가 필요했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쓰레기들이 내면의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을 청소할 때에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이불을 털고,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방은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까? 마음속 케케묵은 먼지는 어떻게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내면의 정리는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나 자신이 나를 힘들게 한 모든 경험과 순간들을 인정해야만 한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누구도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다는 굳은 다짐으로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 없으며 나조차도 나를 힘들게 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상처를 받아도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일어나는 파동을 외면했고, 상처가 곪아서 결국 나를 힘들게 할 때에는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상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기억들과 마주하기로 했다. 


상처를 인정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대충 얼기설기 때워놓은 상처의 살을 헤집고 곪아버린 모든 속을 파낸 뒤에 예쁘게 꿰매고 연고를 발라야 한다. 하지만 상처가 한 번에 아물 수 있을까? 계속해서 상처를 살펴보고, 연고를 바르고, 잘 아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임은 틀림없다. 직접 걸어봤던 길이기에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상처로 범벅이 된 나를 마주해야 할 뿐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자. 아주 작은 상처부터 슬쩍 열어보고, 지금 마주할 수 없다며 내일 다시 또 열어보자.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면 흉터도 없이 아물게 될 것이다. 때로는 흉터를 남기는 상처들도 있다. 그러나 곪아버린 속을 파낸 상처로 인한 흉터는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말

좋은 날이 분명히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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