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를 경외하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이다. 칸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에 대해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인다고 표현한다. 그가 빛나는 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이유를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에 대한 무게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칸트는, 본인이 한평생 바쳐 사고했던 결과물이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의 티끌조차 접근하지 못했다는 것에, '태초의 탄생에 대한 무게'를 그의 묘비에 새길 정도로 무겁게 느낀 것이다.
어느 한 부분에 무게감을 갖는다는 것은, 곧 그만큼 그 부분을 책임지는 것과 연결된다. 책임감은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겨진다. 어떤 관계에서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비치고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때때로 무거운 책임감은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 사안에 집착하고, 오히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종종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팀장으로 있을 때보다 팀원으로 있을 때 보이는 것들, 욕심을 덜어내니 일이 더 잘 풀리는 경험들, 리더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모두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인간관계든, 내가 맡은 업무가 되었든, 힘을 빼고 좀 더 가벼운 책임감으로 임하는 것이 좀 더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만큼 완성도 있는 것은 없다. 때로는 가벼운 책임감이 더욱 완성된 나다운 '나'를 경험시켜 준다.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마다 산책을 했다. 그가 정확히 3시 30분에 맞추어 산책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칸트에게도 산책의 시간은 항상 필요했다. 그를 가볍게 할 수 있는 탈출구였으며, 철학의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잠깐의 시간이, 그의 풍부한 철학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Es ist gut.”
칸트가 임종 전 남겼던 마지막 한 마디. 흔히 “좋다”로 번역되곤 한다. 이 한 마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속뜻을 유추한다. 나는 칸트의 “좋다”를 이렇게 해석해보고 싶다. 그는 죽음을 직접 경험함에 따라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로써 그가 한계에 부딪힌 사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좋다’라는 한 마디에 담아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