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
내일은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다.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오늘 아침에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작년 아버지 장례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와 같이 냉장고에 복숭아가 있다.
아버지 기일과 복숭아. 그 짧은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작년 8월, 자취 중이던 나는 본가에 방문했다. 평소에는 힘들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던 아빠가, 작년 여름에는 유독 자주 놀러오라고 당부하셔서 자주 갔었던 때이다. 아빠가 다른 때보다 가족을 위해 자꾸만 무엇인가를 사오기도 했던 때이기도 하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아빠가 가족들 주겠다고 한 박스 사온 탐스러운 복숭아가 있었다. 비싸서 자주 사 먹지 못하던 과일 중 하나라 맛있게 깎아 먹고 너무 맛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냉장고에 있던 복숭아를 전부 봉지에 담아서 주셨다. 가족이 먹을 복숭아는 또 사면 된다고 하시면서.
자취방에 돌아가서도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 아빠와의 안부 전화 중에도 복숭아가 맛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2~3주쯤 지나고 아빠는 돌아가셨다.
장례를 다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니 약간은 시들해져 있는 복숭아가 있었다. 아빠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사준 음식이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는데 차마 먹을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드라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나 어머니가 싸 주신 반찬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줄이야.
그때의 일 때문에 지금도 복숭아를 못 먹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먹을 때마다 아빠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빠나 나나 부드러운 물복숭아를 좋아했는데.. 아빠랑 그늘 가득한 집 앞 마당에서 복숭아 먹으면서 수다 떨고 싶어지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