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 10 (끝)
도선주 여사가 무언가를 배우러 어디에 나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재밌고 적성이 잘 맞았는지 함께 배우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꽤 잘하는 편이었고 강의하는 선생님들로부터도 매번 칭찬을 받는 것 같았다. 가끔 나에게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사진에 관해 잘 모르는 입장이기에 전문적인 분석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선주 여사의 사진이 좋았다. 그 사진들에 담겨 있는 도선주 여사의 시선이,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눈길이 좋았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허들링〉이었다. 나는 이전에 도선주 여사와 예지와 세윤과 거실에 모여 앉아 함께 크레파스로 그렸던 ‘황제펭귄의 무리’를 〈노팅 힐〉 포스터 옆에 걸어 놓았었다. 그리고 종종 세윤을 안고 그림과 포스터를 번갈아 가며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날 우리가 그렇게 꼭 끌어안고 그 앞에 서 있을 때 우리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선주 여사가 뒤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도선주 여사는 그 사진의 제목을 〈허들링〉이라고 지었고, 얼마 전에 귀띔하길 〈허들링〉도 이번 전시회에 냈다고 했다.
나는 문득 조금 전까진 비명처럼 들릴 만큼 세찼던 빗줄기의 기세가 어느새 한풀 꺾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밤부터 드디어 비가 잦아들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장마가 끝나면 남아 있던 여름의 열기가 가시고 진정한 가을이 시작될 거였다.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벌써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지만 그래도 별 문제없이 시간 맞춰 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하기에 앞서 나의 영원한 ‘줄리아’에게,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그저 선택하며 살아왔을 뿐인 나의 이모 도선주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다가 멈추고 이내 도선주 여사의 밝고 들뜬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다솔아, 어디쯤이야?”
“응, 나 거의 다 왔어. 이제 내려. 세윤이는?”
“예지가 데려왔지. 참, 예지 어머님도 같이 오셨어.”
“아, 정말?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뒤 우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가 전시회장 앞 정류장에 멈추기를 기다리며, 내가 언제부터 신나는 일이 생겨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가 좌우로 데굴데굴 구르지 않았는지, 그 기쁨의 세리머니를 어떤 계기로 그만두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특별한 원인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크면서 자연스럽게 하지 않은 듯했다. 나중에 도선주 여사 앞에서 오랜만에 미친 척 데굴데굴 굴러 보면 도선주 여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상상을 이어 나갔다. 도선주 여사가 다 큰 나에게 이제 그만 자야지, 줄리아, 하고 언젠가 그랬듯 똑같이 말하자 내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아이처럼 예스! 하는 그런 상상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며 정류장에 멈춘 버스의 열린 뒷문으로 발을 내디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