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1994)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1998)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라는 서두로 애송하는 사랑시의 대표작이 된 <뼈아픈 후회>.
그러나 첫 부분을 지나고 나면 "사랑했던 자리"에 '사랑 없음'이 "뼈아픈 후회"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1994년 발표된 <뼈아픈 후회>도, 1998년 개작된 <뼈아픈 후회>에서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결코 나 자신 외에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다는 것, 사랑 아닌 사랑을 하느라, 에고(자아)를 애지중지하느라 한 번도 타자를 돌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 잘해봐야 면벽수련이었을, 보잘것 없는 자기애.
<뼈아픈 후회>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자가 남기는 후회어린 고해이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가 된다는 서술로 시작하는 이 시는, 끝내 마지막에는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로 끝을 맺는다. 4년 이후 개작된 시에서는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그 누구도 나를 믿으며 기다리지 않는다"로 귀결된다. "내가 사랑한 자리"가 "폐허"가 된 이유는 그것이 진정으로 "사랑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누구를 위해/그 누구를/한번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에게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옹졸한 폐허만 남았다.
시에서 "나에게 왔던 사람들"은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모두 떠"났다. "나"라는 닫힌 문을 온몸으로 두드리느라 어디간 부서졌을 것이다. 사랑이란 나(주체)가 아닌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 이를 통해 일상의 좌표가 어그러지거나 혹은 망가지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왜 위대한가? 사랑이 아니고서야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서 용을 무찌르고 탑에서 벗어나듯 현실을 초월하고, 극복하는 힘이 곧 사랑이다. 이를 위해 다치거나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나"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사랑하고 상처입고 떠나간 자들은 부서졌으나, 그럼에도 그들에게 그 곳은 "사랑한 자리"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 그 자리는 "사랑한 자리"가 되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의 차이를 정말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지만 중요한 세부 사항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립성 요구는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사랑은 그와 완전히 상반된다. 죽은 별처럼 다른 사람 주위를 돌면서 흡수하는 것은 급진적이지 않다. 그것은 마이클 하트가 말한 '동일자의 사랑love for the same'으로서, 차이를 지움으로써 통합하는 것이며 자기애적 형태의 사랑이다.
스레츠코 호르바트, <사랑의 급진성>, 155쪽.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이 세상, 즉 언제 또 만날 지 모르는 타인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만 "나"에게 사랑은 영영 미완으로, 미지로 남는다. 단단한 자아, 아집으로 둘러싸인 "나"의 사막은 나르키소스의 연못처럼 자신 외의 누군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막은 마침내는 자신조차도 잡아먹어 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