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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Mar 11. 2024

이순(耳順)에 찾아온 봄

(고향에서 온 편지)



내 고향은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이다.   

중학교 때 마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 고향은 거제도이다. 엄마는 평생을 태어난 그곳에서 자랐다. 고향을 떠나오던 그날이 지금도 생생히 각인되어 있다. 이삿짐을 실은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교회 마당엔 이별의 슬픈 봄바람이 불었다.


큰 향나무 한 그루 앞에 엄마는 철퍼덕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셨고 교인들과 동네 어르신, 친척들도 함께하셨다.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가끔 휴가철이 되면 고향으로 간다. 십수 년간 많이 변해버린 고향이지만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지세포 교회 입구엔 그 향나무가 오랜 세월을 이고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날의 이별을 저 나무는 기억할까.    


  

예순 번째 봄이 오고 있다.

아직 쌀쌀한 봄바람 속에 고향이 있다.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걸까. 이제 나이가 든 탓일까. 시퍼런 바다가 좋아 바다가 있는 곳으로 하루 여행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삼천포를 지나 남해 상주 해수욕장까지 다녀왔다. 구불구불 국도를 달리다가 작은 어촌마을을 기웃거려 보았다.

그냥 오래된 낡은 집들이 정겹고 따스했다. 하늘과 바다는 파랗고 부두엔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해 있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다. 내 고향을 닮은 풍경이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고향 내음이 진하게 묻어오고 있었다.  

   

상주해수욕장엔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 숲이 있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어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20대 초반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소나무가 이처럼 크게 자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은 두 팔 벌려 안아도 모자랐다. 칼날 같은 세찬 바람을 막아내다 방풍림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저 소나무는 제 몫을 다하고 있었구나.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내 삶의 열매는 무엇일까. 날마다 감사의 씨앗은 잘 뿌리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숙연해졌다.  

    

하루 동안 고향 생각에 젖어 다녔다. 해수욕장의 바닷바람도, 방풍림 속에 이는 이른 봄바람도, 국도를 달리며 스치는 바람도 온통 내 고향에서 온 편지가 되었다. 늘 응원하며 그대로 기다리고 있다고, 언제든 와서 쉬어가라는 고향 소식을 봄바람이 전해 주었다.


고향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응원해 주고 있었음을 잊고 살았다. 이토록 작은 봄바람에도 그리움이 불쑥 묻어나오니 고향은 참으로 묘하다. 아마도 고향은 그리움이고, 이 그리움이 내 삶의 쉼터였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이 또한 예순 번째 다가오는 봄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 집에도 봄이 오고 있다. 작년 9월에 프리지어 구근을 심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연노랑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다. 서서히 노오란 꽃을 피우며 봄의 전령사답게 진한 향기 뿜어내겠지.

    

나의 이순의 봄이 또 어떤 빛깔과 향기로 피어날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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