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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에디터 May 30. 2024

나의 책 육아는 누구를 위한 책 읽기였을까?

책 육아에 관한 단상


5살 터울이 나는 자매를 기르면서

 나는 의도치 않게 극단의 독서환경을 만들게 됐다. 


첫째 때도 둘째 때도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부족한 엄마다. 


첫째 때는 5살까지 하루 20권이 넘는 책을 읽어줬지만

둘째 때는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날도 많았다.



독서도 주입식이 가능할까?


첫째는 나의 열정적인 책 육아 덕분인지

말도 

발달도 유난히 빠른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성향은 내가 더욱 열심히

책 읽어주기에 몰두하게 했다.


사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책 육아에 매달린 이유는 분명했다. 


나에겐 남들에게 듣고 싶고

필요한 말이 있었다. 

내 아이가 어디에서도 뛰어나다는 말.

그 말은 나의 힘든 육아를 보상해 줬고

무너진 나의 자존감을 일으켜 줬다. 


그 시절 아이의 영광은 나의 기쁨이었고 

아이의 실패는 나의 좌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 

아이에게

책을 읽고 또 읽어줬다. 


항상 나의 만족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이뤄줬기에 

다른 사람과 차별될 수 있는

 특별한 사교육도 

첫째에게 시켰다. 

한글이 완성된 시점엔

엄마표 영어에 돌입했다. 


이제 한글은 물론 영어에도 

능숙한 아이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목표가 분명했기에 나는 아이가 멍하게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그 틈을 비집고 강박적으로 책을 읽어줬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영어동요로 영어 흘려듣기를 했다. 


아이가 대화를 멈추고 오직 영어에 집중해 주기를 바랐다. 


여행 가서도 나의 집요한 책 육아는 계속됐다. 

여행지에서도 쉬는 시간, 

자기 전에는 책 읽기가 계속됐다. 

그 시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또 그 시절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얻은 것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는 나의 만족감.

잃은 것은 

여행 간 그날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진 

바다의 풍경과 냄새.

파도 소리로 만 가득 찬 밤바다의 풍경

우리가 평생 기억해야 할 

낯설지만 특별한 장소가 주는 설렘

그리고 함께 하는 행복.

독서를 책으로 배웠던 나는 

어린 시절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확장시키는 데만 몰입했다. 

그런 나의 육아는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둘째가 생기고 

다시 나를 갈아 넣는 소모적인 육아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방황하게 했다.

나에게도 충전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불안감과 공허함을 달랬다.

방황했던 그 시절 나는 진짜 독서를 경험했다.

그 이후 아이의 책 육아 보다 

나의 책 읽기에 몰두했다.

그래서인지 둘째의 언어능력은 

또래와 비슷하거나 조금 늦었다.

하지만 나는 조바심도 불안도 겪지 않았다.

생명이 탄생해서 성장하는 경이로움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나의 내면은 좀 더 단단해졌고 

나만의 육아관도 생겨 

그 누구의 육아를

 따라 하지도 

쫓아가지도 않았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불면증에도 벗어났다. 

이제는 가족들과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차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익숙하지만 정겨운 동네 풍경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에 걸린 구름 모양을 상상하고

지금 이 햇살이 얼마나 우리를 축복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은 

책과는 조금 멀어졌지만

지금 현재,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지금은 많은 책을 읽어주기보다 

질문을 통해 책을 읽고 

아이와 생각을 나누는 하브루타 독서를 하고 있다. 

책 내용보다 아이가 책을 통해 

아이가 어떤 생각과 감상을 느끼는지 듣고 있다. 



나와 아이들 모두 하브루타 시간을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특히 하브루타 시간

 둘째의 엉뚱하고 창의적인 질문과 대답은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 


첫째는 한글 교육을 많이 시켰기에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랐다. 


둘째도 내년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 


한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둘째는 

혼자 한글을 읽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둘째가 우연히 받침 없는 간단한 글자들을 읽을 때면 

가족들은 놀라고 감동했다. 


둘째는 지금 스스로 한글을 읽으려 노력 중이다. 


스스로 책을 펴고 더듬더듬 글을 읽어나간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할 정도로

물론 대부분 글자를 엉터리로 읽고 있다. 


그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다. 


유치원 '독서 골든벨' 퀴즈대회에서 탈락했다고 

이번에는 자신도 우승하고 싶다고 

스스로 책을 챙겨 읽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다. 


내가 채워주지 못한 공백과 결핍을

아이는 스스로 채워나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첫 육아는 나의 속도로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갔다.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기에

아이가 가진 능력은 아직은 백지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백지는 아직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하지만 나는 한때

 아이가 자신만의 색깔로

스스로의  백지를 

 채우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판단으로 그 백지를 채웠다. 


극단의' 책 육아'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나의 책 읽기와 

아이의 책 읽어주기를 

분리할 것이다. 


나를 위한 책 읽기는

부모로서 성장하며 겪는 나의 혼란과 성장통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게 할 것이다.


아이에게 나의 불안을 투영시키며 

책을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아이의 백지를 스스로 채워나가는데 

힘이 되어줄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을 읽어줄 것이다. 


그렇게 책이 우리 삶으로 들어와 

자신만의 취향과 속도로 

따로 혹은 같이 책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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