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를 위해 거실에서 TV를 없애기로 결심했다면 꼭 읽어보세요!
우리 집의 구성원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엄마인 나는 '독서를 꾸준히 해 온' 사람. 반면 남편은 한결같이 '독서'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 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손에 책이 들린 순간을 본적이 거의 없다.
엄마를 닮아 독서를 적당히 즐기는 초등 첫째 딸. 평범한 유치생 둘째 딸이다.
대개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나는 첫째가 초등 입학 전 '교육에 진심'인 엄마였다. 그것도 엄마표 교육에. 내가 이끄는 대로, 만드는 대로 아이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재교육 관련 서적에 큰 감흥을 받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졌다. 나의 이런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첫째는 유난히도 말이 빨랐다. 7개월부터 단어를 내뱉더니 돌 이후는 어른과의 대화도 가능했다.
"역시 나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더욱 학습과 독서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몰입했다.
독서 환경을 위한 우선과제는 바로 'TV를 없애는 것'이다. 나는 원래 TV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이라 안 그래도 눈의 가시였던, 거실 한복판을 차지했던 TV를 치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이었다. 신랑은 밖에서는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이지만 집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TV앞에서 보내는 아빠였다. 신랑이 집에서 아이와 놀아줄 때 눈은 대체로 TV에 가 있었다.
'거실을 서재화'하기 위해서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아이의 거부'가 아닌 '신랑'이었다.
그는 TV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알고 있는 남자다.
화면을 편안히 보기 위해 거실의 밝기를 조금 어둡게 설정하고,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는 가장 편안한 자세를 알고 있다.
그리고 더 효과적인 TV시청을 위해 소파배치를 이리저리 바꾸는 부지런함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를 설득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숙제였다.
나는 퇴근한 남편을 앞에 앉혀두고, 지금 첫째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로서 독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신랑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나의 노력에 못 이기는 체 나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힘든 회사 생활 중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쉼'이라고 했다.
그런 신랑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그도 언젠간 나에게 고마워하는 날이 오겠지.
우리에겐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그의 대답은 "TV를 없앤다면 자신은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 아이 같은 대답에 웃음이 나왔지만 대답의 내용과 달리 신랑의 표정은 무거웠다.
대신 신랑은 절충안을 제안했다. 바로 'TV를 자신의 방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바로 신랑은 TV를 자신의 방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첫째가 태어나고 매일 늦게 귀가하는 신랑은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잠을 잤다.
신랑의 방은 간단한 옷가지와 침대만 있는 우리 집 복도 맨 끝, 가장 작은 방이었다.
낮에는 들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방이었다.
그 작은 방에 커다란 거실용 TV가 들어가니 더 답답하고 좁게 느껴졌다.
하지만 거실을 서재로 바꾼 덕에 나는 아이와 매일 아침 영어동요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정말 유익한 하루를 아주 잘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신랑의 퇴근 후와 주말이었다.
신랑은 퇴근하고 돌아와서 맛있는 간식을 들고 자기 방 TV 앞으로 갔다. 좁은 방에 문까지 닫고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문을 열어보니 신랑 환하게 웃으며 평소 아이가 있어 보지 못했던 액션영화를 아주 원 없이 보고 있었다.
행복해하는 신랑의 모습이 거슬렸지만 다시 결정을 되돌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평소 아빠와의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던 첫째도 아빠가 오면 아빠와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갔다.
잠만 자고 바로 출근하던 신랑의 방은 신랑과 딸의 아늑한 아지트가 되었다.
신랑과 딸은 방에서 간식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시 여름이었지만 끝방은 에어컨 배관이 연결이 되지 않아, TV에서 나오는 열기가 뜨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방이 작은데 큰 TV가 들어가니 앉을 공간도 넉넉하지 않아, 침대에 걸터앉거나 누워서 봐야 했다. 이렇게 불편하니 남편도 TV 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거실을 서재'로 바꾸면서 가장 즐거워진 것은 우리 신랑이었다.
신랑이 집에 있는 날은 아이가 TV를 보지 못하게 거실로 억지로 데리고 나와 더 열심히 놀아주고 책 읽어주느라 난 지쳤고 신랑은 그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겼다.
복도 끝에 위치해 신랑 외엔 좀처럼 사람이 들어가지 않던 방이었는데 주말이면 그 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활기찬 방이 되었다. TV를 따라 신랑이 가장 먼저 들어갔고, 아빠를 따라 첫째가 들어갔고, 첫째를 따라 나까지 TV앞에 앉았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35층으로 거실은 탁 트인 바다뷰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반반 보이는 전망으로 날씨가 좋은 날은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늘과 바다 전망을 뒤로하고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면 복도 끝방 티브이 앞에 모두 모여있었다.
사람 3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방에 티브이열기까지 더해졌지만 우린 선풍기 하나로 버티며 땀을 흘리며 티브이 앞에 모여있었다.
넓은 거실 식탁을 두고 우리는 딸의 '뽀로로 상'을 펴서 밥을 먹었다.
이따금 신랑이 거실에 물 마시러 나와 "와 오늘 날씨 정말 좋네. 전망 정말 예쁘다"하고 다시 끝방으로 갔다.
그날 그 사건 이후 나는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서재로 만들자'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TV는 죄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도 주말 거실에서 TV를 보는 신랑에게 아이들이 항상 놀아달라고 장난을 건다. 신랑은 TV를 자신의 방으로 옮겨 달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나는 절대 거절한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TV를 없앤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빠를 뺏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쉼'을 받아들였다.
TV가 어디에 있든 쫓아가면 그만이다. 책을 즐긴다면 장소는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위안을 가져본다.
거실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