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스컹크맨과 블루씨스루가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고 있다.
블루씨스루
왜 그러셨어요. 생방송 중에 그렇게 흥분하시면 안 된다니까.
스컹크맨
그 자식 날 망신 주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거라니까. 방구뽕 그놈 그거 자기 이름도 아닐걸? 계속 쫓아다니면서 시비나 걸고 말이야.
블루씨스루
유튜브 기자들이야 뭐 관심 끌어서 조회수 올리려고 별짓 다 하는 거지. 그냥 무시하세요.
스컹크맨
그나저나 진박사 그 자식은 거기 왜 온 거야?
블루씨스루
그러게요.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어휴, 됐어요. 말해봤자 기분만 상하지. 아무튼 우리 입장 다 밝혔으니 뭐라고 떠들건 말건, 지구가 망하건 말건 이제 신경 끕시다.
스컹크맨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가족들한테까지 피해가 가는데….
블루씨스루
별수 있나요. 잠잠해질 때까지 버텨야죠. 한잔해요.
두 사람, 건배하고 막걸리 마신다.
스컹크맨
참, 아까 협회장한테 전화 왔었어.
블루씨스루
스파이더맨이요? 뭐래요?
스컹크맨
기자회견 보고 연락했다고. 상의도 없이 그렇게 발표해버리면 어떡하냐고.
블루씨스루
상의했으면? 협회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지가 대신 변호해줄 것도 아니면서.
스컹크맨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잖아.
블루씨스루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스컹크맨
‘방송에서 본 그대로다. 우린 매우 타이어드하다. 그래서 협회 탈퇴할 거다.’ 그랬지. 그랬더니 어쩌고저쩌고 한참 얘기하는데 말이 워낙 빨라서 못 알아듣겠더라고. 뭐… ‘만나서 얘기하자. 한국으로 당장 가겠다.’ 그런 뜻 같길래 ‘그럼 당신이 통역 구해 오슈! 난 당신 대접할 기분 아니니까!’ 그랬더니 오케이! 그러더라고.
블루씨스루
아, 오긴 뭘 와. 전 안 만나요. 형님, 혼자 만나세요.
스컹크맨
같이 봐. 지가 통역도 구해서 오겠다는데.
블루씨스루
뻔하잖아요. 회원 수 줄면 자기 입지 좁아지니까… 그럼 지구는 누가 지키냐, 코리아 위상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사탕발림할 거 뻔한데… 어차피 발표도 했고 더 이상 바뀔 것도 없는데.
스컹크맨
야, 그래도 끝까지 마무리는 해야지.
블루씨스루
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국제 히어로협회를 도대체 왜 만든 거냐고. 복지, 혜택? 뭐 이런 건 바라지도 않아. 최소한 히어로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고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스컹크맨
그러니까 내가 선거 때 스파이더맨 뽑지 말자 그랬잖아.
블루씨스루
이렇게 개판 칠 줄 알았나. 젊었을 때처럼 잘할 줄 알고 뽑았지.
스컹크맨
그게 또 다르지. 현장 출신이라 협회 같은 행정 쪽 일은 경험이 없으면….
블루씨스루
경험이 없으면 협회장 나오지 말고 현장에서 전설로 남던가.
스컹크맨
히어로도 사람인데 그게 되냐?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몸도 불고… 듣자 하니 그 친구, 거미줄 나가는 게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야. 축축 늘어지고 뭐 자주 끊어지고 그런다네… 젊은 히어로 애들은 밑에서 계속 치고 올라오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알아서 빠지는 게 낫지.
블루씨스루
그러니까 결국 자기 살길 찾으려고 협회장 선거 나온 거잖아요.
스컹크맨
그렇지. 나이 들었다고 밥 안 먹는 건 아니니까.
블루씨스루
그런 자리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일해야지. 자기 명예, 이익이나 취하려고 말이야. 스파이더맨 옛날에 진짜 좋아했었는데… 협회장 되고 일하는 거 보면서 대박 실망했네! 진짜.
스컹크맨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도 있지. 사람 안 변한다고? 난 그거 아니라고 봐. 변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야.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풍경이 달라지거든. 그런데 어떻게 안 변해?
블루씨스루
형님, 스파이더맨한테 뭐 받아먹은 거 있어요? 왜 이렇게 감싸는 거예요?
스컹크맨
감싸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보니까 그냥 그렇다고. 그래, 네 말 맞지. 그 친구, 결국 자기 밥그릇은 다 챙겼으니까.
블루씨스루
국제 히어로 협회장이잖아요. 미국 히어로 협회장이 아니라고요. 미국 이익 취할 건 다 취하고! 예? 젊었을 때 히어로 대접받을 거 다 받고, 누릴 거 다 누렸으면서! 안 그래요?
스컹크맨
그래. 그 친구랑 비교하면 우린 완전히 늘그막에 히어로 됐으니까.
블루씨스루
협회 총회 처음 참석했을 때 신입회원들 인사하라고 하는데… 새파랗게 어린 10대, 20대 히어로 애들 앞에서… 머리 희끗희끗한 양반들 넷이 쪼르륵 서 가지고….
스컹크맨
맞아. 그랬지. 허허.
블루씨스루
에이, 관두길 잘했어요.
스컹크맨
그런데도 그 자식은 계속한다잖아. 초록색 푸르죽죽한 놈.
블루씨스루
걔가 그만두겠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 주는데. 신나지 아주 그냥.
스컹크맨
다들 걔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난 진짜 이해가 안 돼.
블루씨스루
키도 크고 잘 생기긴 했잖아요.
스컹크맨
아이고, 그 얼굴이? 잘 생기긴 개뿔!
블루씨스루
우리 중에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스컹크맨
인정 못 해. 우리 딸은 내가 제일 잘 생겼대!
블루씨스루
인기가 제일 많은 건 사실이니까. 외모가 그나마 제일 봐줄 만하잖아요.
스컹크맨
아냐! 외모 때문이 아니라 능력 때문이야. 나도 그놈처럼… 응? 슉! 슉! 빨리 달리고 뭐 그런 능력이었으면 그거 또 모른다. 응? 아니면 힘이 엄청나게 세진다던가! 투명 인간, 염력… 뭐 그런 거 많잖아. 그런데 하필 이게 뭐냐? 쪽팔리게 방귀나 뿡뿡 뀌고 다니고… 이게 또 냄새로 발휘되는 능력이라 컨트롤도 잘 안 돼요.
블루씨스루
그렇지. 특정이 안 되지.
스컹크맨
너 그때 생각나지? 인천 칼부림 난동 때!
블루씨스루
아, 어떻게 잊어요. 그날을. 칼 든 놈만 마취시켜야 하는데 그날 바람 엄청나게 불어서….
스컹크맨
그래. 그때 출동한 경찰들,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다 마취 돼 가지고. 몇 명이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