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블루씨스루
뭐 백, 이백 정도 됐었나. 구급차 수십 대 오고… 그 안에 나도 포함되지. 나도 현장에 있었으니까. 정신 차려보니 응급실이잖아. 그날 현장보다 그 뒤가 더 힘들었지. 사람들 마취, 제대로 안 풀려서 걷질 못하네. 말을 잘 못하네.
스컹크맨
소송만 수십 건에다 재판 땜에 법원에 들락날락… 도대체 쟤 누가 불렀냐고… 여기저기 악플로 도배되고 욕은 욕대로 먹고… 와, 세상에 내가 살면서 그런 욕은 처음 들어봤네. 다 같이 입에 걸레를 물었나. 광복아. 말이란 게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거 아냐? 야, 욕하는 인간들은 아예 상종하지 마.
블루씨스루
당연하죠. 그런 인간들하고 같이 있으면 나까지 수준 떨어지는 거지.
스컹크맨
또 뭐야. 그거… SNS랑 유튜브에 내가 방귀 뀌는 짤 만들어서는… 그 부분만 영상 딱 편집해서 응?
블루씨스루
맞다. 맞다. 웃기긴 했어. 그거. 허허.
스컹크맨
(한 잔 벌컥 마시고는) 우리 딸이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눈이 시퍼렇게 멍들어서 온 거야.
블루씨스루
왜요?
스컹크맨
나도 물어봤지. 어쩌다 그런 거냐? 그런데 이 녀석이 끝까지 말을 안 하네? 담임한테 전화했지. 같은 반 친구들이 놀렸다는 거야. 니네 아빠 짤 봤다고. 그런 아빠랑 한집에 어떻게 같이 사냐고. 방귀만 뀌면 기절하거나 몸이 굳어버리잖아 그러면서 방귀쟁이, 방귀쟁이 막 응? 그랬겠지? 그래서 이 녀석이 우리 아빠 방귀쟁이 아니라고… 놀리던 애들 대여섯 명이랑 치고받고 머리끄덩이 잡고… 뭐 그랬대. 그런데 그 얘길… (울컥해서 목이 메는 듯) 아빠한테 말은 않고… 아빠 걱정할까 봐.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제 열두 살밖에 안 된 녀석이… 못난 아빠 땜에… 내가 그 얘기 듣고 열이 뻗쳐서 그냥… 학교 건물에다 큰 거, 몇 방, 부아앙! 싸질러버리려다가….
블루씨스루
안 되지. 또 뭔 난리 나려고. (고개 숙인 채 어깨 들썩이는 스컹크맨) 아, 왜 울고 그랴. 또.
블루씨스루, 손수건 꺼내어 건네고 스컹크맨 받아서 닦는다.
스컹크맨
나 진짜 너무 힘들어.
블루씨스루
(토닥토닥) 힘들지. 힘들어. 방구쟁이 힘들지.
스컹크맨
방구쟁이 하지 마.
블루씨스루
알았어요.
스컹크맨
아무튼 이런 심정 누가 알겠냐?
블루씨스루
내가 알잖아요.
스컹크맨
그렇지. 이박사 너밖에 없다. 진짜.
블루씨스루
이제 좀 쉽시다. 다 내려놓고. 그동안 너무 긴장한 채로 살았어.
스컹크맨
맞아. 이게 방심하면 안 되잖아. 사실 자다가 와이프도 응급실에 몇 번 실려 갔었어. 그래서 그때 이후로 잘 때도 긴장을 못 놓겠더라. 생각해봐. 내가 잠잘 때까지 이 똥꼬에 힘을 빡 주고… 에이, 됐어.
잔을 벌컥 들이키는 스컹크맨.
블루씨스루
아유, 그렇게 어떻게 살아. 그런데 신기한 건 형님은 아무리 냄새 맡아도 괜찮다는 거.
스컹크맨
그러게. 아무리 맡아도 난 괜찮아. 내 방귀라 그런가?
블루씨스루
난 내 방귀 냄새도 싫던데. 냄새는 느껴지죠?
스컹크맨
그렇지.
블루씨스루
참 신기해.
스컹크맨
방귀 얘기 그만 하자.
블루씨스루
네. 그래요.
침묵.
스컹크맨
방귀 얘기 안 하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블루씨스루
그러네. 또. 허허.
침묵.
스컹크맨
아무튼 난 정말 히어로 되고 나서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던 것 같아.
블루씨스루
맞아요. 저도 주위에서 그러더라고요. 히어로 되고 나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그제야 느꼈어요. 아, 나 불행하구나. 그래서 형님이 히어로 관두자고 했을 때 바로 찬성했잖아요.
스컹크맨
그래, 기다렸다는 듯이.
블루씨스루
맞아요. 하하. 그랬죠.
스컹크맨
너도 꽤 힘들었어. 그렇지?
블루씨스루
비슷하지 뭐.
스컹크맨
그래도 넌 나보다 낫잖아.
블루씨스루
뭐가요?
스컹크맨
투시 능력… 네 능력은 쪽팔리진 않으니까.
블루씨스루
그렇긴 한데… 따져보면 이게 딱히 써먹을 때가 없어요. 히어로라고 하기엔 좀 아쉽죠. 그런 생각 가끔 해요. 눈에서 레이저 광선 나가고 쇠 같은 거 녹이고 뭐 그런 거면 더 좋지 않았을까.
스컹크맨
아니. 난 생각이 좀 다른데? 지금 와서 말하지만… 사실 난 이박사 네 능력이 졸라 부러웠어.
블루씨스루
엥? 뭐가? 어떤 점이…?
스컹크맨
넌… 다 볼 수 있잖아.
블루씨스루
뭘 다 봐요?
스컹크맨
있잖아. 그거….
블루씨스루
그거 뭐?
스컹크맨
그 왜… 여자들… 응? 얼마나 좋아. 아이 부러워.
블루씨스루
….
스컹크맨
맞지? 아냐? 왜 대답 안 해? 좋지?
블루씨스루
그것도 계속 보면 재미없어요.
스컹크맨
왜? 왜? 왜? 그게 왜? 난 공감이 하나도 안 되네?
블루씨스루
오히려 불편해요. 사람들이 자꾸 어색해하고 슬금슬금 피하면서 나랑 말도 안 섞으려고 하고….
스컹크맨
아아.
블루씨스루
변태 보듯이 날 보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아시죠?
스컹크맨
난 모르지.
블루씨스루
아니, 내가 뭐 보고 싶어서 보나? (스컹크맨을 하부를 바라보며) 그냥 보이는 걸 어떡해? 응?
스컹크맨
(블루씨스루의 시선을 느끼고) 불편하네. 좀.
블루씨스루
아, 죄송해요. 말하다 보니까. 아무튼 뭐 가족들도 예전 같지 않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외딴섬에 덩그러니 나 혼자 던져진 느낌이랄까.
스컹크맨
그러네. 또 그런 아픔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