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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 Apr 05. 2024

고통은 흐릿해지고

외로움은 짙어져만 간다.

그때는 몰랐다.

당시의 힘듦이 내 인생에서

아픔의 절정인 줄 알았으나


이제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별 것 아니었단 생각이 들어서

다시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겁쟁이.


자그마한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고,

더 이상은 고통스럽기 싫다는 그 바램에 의해

계속해서 도망쳐왔다는 말이다.


절대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허망하게 흐르고 나서 지금 드는 생각은


시간이 흘러 고통은 흐릿해지고

공허한 마음과 인간의 외로움은

짙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트랩 위에 놓인 치즈에

자꾸만 걸려 잡히는 순진한 쥐처럼,


파리지옥에 얻어걸려

자꾸만 죽어버리는

작은 파리처럼,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유리창에 부딪혀 추락하는

가여운 새처럼,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에게서

애석하게도 사랑을 느끼고

자꾸만 상처를 받는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알면서도 속는다.


이미 결과를 다 알면서도 속아 넘어간다.


내가 유독, 유별나게

잘 혼동하는 탓이라 생각했다.


순진한 거라고, 착한 거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만 생각했다.


그저 외로움에 목마른 어린양이었다며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신에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울분을 토하며 질문한다.


무저항도 죄가 되느냐고.


추락은 멈추지 않았고,

내가 닿을 수 있는 밑바닥까지

그곳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

늘 태평하게 보이던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

나는 그동안 두려웠던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어쩌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리고 그럼에도 가차 없이 흐르는 나날이

"

—우미노 치카 <허니와 클로버>


 그러려니 할 줄 알아야 한다.


트랩인 줄 이미 알아채야 한다.

파리지옥인 줄 알아챌 줄 알아야 한다.

앞에 창문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일 년을 기다린

사랑하는 가족이 지어준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게


곧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자꾸만 죽어버리는 안타까운 생명들같이.


나만큼은 경계를 낮춰서는 안 된다.


내 이름이 소중한 것쯤,

그것쯤만 알아도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줄 거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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