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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민 Jun 28. 2024

사랑이요?

 초등학생 때 ‘어린이를 위한 네이버 지식백과 모음’ 대충 이런 제목의 책이 있었다. 네이버 지식인에 등록된 창의적인 질문과 답변들을 엮어 만든 책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열심히 읽었다. 읽다가 다른 질문들은 이해가 가는데 한 질문이 유독 이해되지 않았다.


Q. “사랑니는 언제 나는 건가요?”

A. “사랑을 알게 될 때 납니다.”


나는 사랑이란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데, 그렇담 왜 사랑니가 나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사랑니가 빨리 나고 싶어서 옆에 계시던 친할머니한테 사랑이 뭐냐고 물었다. “뭐긴, 서로 좋아하는 게 사랑이지.” 그건 나도 아는데 왜 사랑니가 안 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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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나는 어느덧 사랑니 네 개를 꽉꽉 채워 가진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이 뭔진 모르겠다. 그 어감조차 생소하다. 사랑을 해봤냐는 질문을 받으면 ‘사랑’이요? 해본 적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랑이 인생의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가, 손에 넣을 수가 없다. 돈을 제일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 거지로 살아가는 모양새처럼 비루하다.


오랜 친구인 희수와 만나면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할 때가 많다. 그녀와 나는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그녀는 매번의 연애가 사랑이었다고 했다. 그 말이 꽤나 멋있었다. 나는 한 번 하기도 힘든걸 매번 하다니. 희수는 연애를 할 때마다 항상 상대에게 깊게 빠져들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감정의 오르내림이 심하다고 했다. 행복할 때는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하다가, 슬플 때는 모든 걸 잃은 것처럼 슬퍼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미소를 입에 달고 살았던 시절과 울면서 내게 전화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나와 달리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잘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표현할 줄 알았다. 나는 좋아하는 만큼의 반도 표현을 못했다.


 ‘사랑’은 못해봤지만 희수처럼 누군가를 온 맘 다해 좋아해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봤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감정이 파도를 쳤다. 그의 이름을 민수라고 한다면, 친한 동기는 그런 나를 보고 민수성 bipolar(양극성장애, 조울증)이라며 놀렸다. 그런 내 모습이 맘에 안 들어서 좋아하지 않으려고도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사랑을 해볼까 하고 열심히 그를 좋아해 봤다.


 통금이 11시였던 내가, 회식에 그가 온다는 말에 아빠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몰래 집을 나갔다. 인생 최초의 새벽 탈출이었다. 하필이면 손흥민이 축구를 하는 날이라서 아빠가 늦게 잤다. 아빠도 밉고 손흥민도 미웠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경기가 끝나고 아빠가 방으로 들어갔다. 살금살금 문을 열고 나갔다. 도어록 소리에 아빠가 깨지 않을까 무서웠다. 한창 코로나 시기였는데, 집 문을 열고 나가 도어록이 닫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쓰고 온 게 생각났다. 동생에게 마스크 한 장만 가지고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마스크를 쓰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될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아파트 정문에 도착해 어플로 택시를 불렀는데 잡히질 않았다.

우연찮게 정문으로 들어오는 퇴근하는 택시를 봤다. “기사님!! 퇴근하세요...?”라며 택시로 달려갔다. 기사님은 내가 딱했는지 타라고 하셨다. 회식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주량이 소주 5병은 족히 넘는 것 같았다. 마셔도 마셔도 안 취했다. 나는 주량이 맥주 한 잔인데 새벽 5시까지 정신력으로 버티고, 첫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숙취로 하루를 날렸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에 있어서 제일 노력한 기억이라 하면 짝사랑할 때의 이 기억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는 여러 번 나를 비참하고 힘들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를 흔들어 놓는 말을 하다가 다른 사람과 연락을 했고, 내가 그에 대한 마음을 접고 누군가와 가까워 지려하면 내게 왜 본인 같은 사람을 안 보고 그런 사람을 보냐고 했다. 이젠 정말 네가 나한테 마음이 있구나 느꼈을 때는 내게 장난을 심하게 쳐서 다치게도 했다.


그래도 그를 계속 좋아했다. 미련하게 주인에게 맞고도 주인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좋아했다. 참 열심히 좋아했는데, 어느샌가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내게 사랑이었는지 꽤 오랜 기간 생각해 봤다. 여러 고민 끝에 사랑은 아니었단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도 사랑에는 실패했다. 나는 사랑은 훨씬 더 깊은, 내 인생을 흔드는 감정일 거라고 막연히 믿는다. 언젠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과 하고 싶다. 동물과 아기를 좋아하는, 똑똑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둘이 같이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으면 좋겠다. 그 언젠가의 나는, 사랑을 잘 알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가진 만큼 주고도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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