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간호사였을 때 담당환자의 첫 죽음은 이러했다. 그는 간암 말기 환자였고 처음에 봤을 때는 병원생활 많이 해본 신경질적인 아저씨. 그런 이미지였다. 급격한 위약감으로 응급실에 방문했고, 응급실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 이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다고 판단되어 입원절차를 밟은 환자였다. 연명치료를 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희박하여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고 최소한의 치료만 한다는 의미의 DNR서류를 작성한 환자라, 임종을 기다리며 보존적 치료만 하는 중이었다. 담당 간호사로서 하루하루 그 환자를 볼 때마다 의식이 쳐지는 게 느껴졌다. 원래는 짜증을 많이 내던 환자가, 가면 갈수록 대답 한마디도 힘들어하고 여기가 어딘지도 헷갈려했다. 점점 그 환자에게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게 눈으로 보였다. 며칠을 버티던 그 환자는 어느 날 활력징후가 점점 안 좋아지고 살 날이 몇 시간 남지 않아 보였다. 나는 담당의사에게 활력징후를 알렸고, 의사는 사망 선언할 시기가 되면 다시 알려달라고 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아들 보호자가 뛰어나와 찢어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간호사님,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가...” 병실에 가니 환자에게 연결된 모니터는 요란하게 비프음을 울리고 심전도는 완전한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동공 반사는 없어지고 맥박도 뛰지 않았다. 마른침을 삼켰다. 몸 전체가 심장인 것 마냥 두근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지만을 기다리는 보호자에게 담당의사를 부를 테니 가족들을 모두 불러달라고 말했다. 곧 가족들과 담당의사가 도착했다. 바빠서 머리도 못 감은 추레한 차림의 레지던트 1년 차 의사는 두 손을 모으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망선언을 했다.
”00시 00분, 000님 사망하셨습니다. “
몇 초의 흐느낌 후 환자의 배우자는 미동 없는 환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편해질 거야. 잘 가 여보.”
아들 보호자는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죽음에서야 비로소 편해질 환자를 위해 속으로 짧은 기도를 했다. 나는 보호자들에게 환자를 처치실로 옮겨 깨끗한 옷을 입혀드리고 다시 안내해 드리겠다고 말하고 사후처치를 준비하러 갔다.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다 고개를 쳐들고 입술을 물어뜯었으나, 어김없이 흐르는 눈물을 근무복 소매로 훔쳤다. 우는 걸 들키면 선배 간호사들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나머지 눈물은 저절로 들어갔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신규시절을 벗어나고, 3년의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겪으면서 나는 죽음에 꽤나 익숙해졌다. 코로나 부서에서 일을 한 지 몇 개월 지났을 무렵 5호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 선생님이 나이트 근무 때 5호실에 있다가, 컴퓨터로 잠깐 노래를 틀고 흥얼거리셨는데, 갑자기 같이 흥얼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5호실엔 의식 없는 임종직전의 환자와 선생님 단 둘이 있었다. 무슨 소린가 하고 흥얼거림을 멈췄지만, ‘흠-흠--’ 소리가 몇 초간 더 들리더니 멈췄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간호사들이 저마다 5호실에 저승사자가 있는 거 아니냐, 5호실은 다른 호실보다 사망하는 환자가 많은 것 같다, 그 방에서 멀쩡하던 환자가 섬망이 생기는 일이 잦더라 라며 입을 모았다. 5호실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영혼이 아직 떠나지 못해 계속 환자들을 데려가는 것 아니냐는 선생님도 있었다.
몇 주 전 한 할머니 환자가 5호실로 입원했다. 그 환자는 평소 투석을 하던 환자였는데 코로나 치료와 투석을 병행하려고 입원한 경환(중증도가 낮은 환자)였다. 하지만 그 환자는 본인이 죽을 고비에 있다고 생각하며 심각하게 불안해했다. 그녀는 10분에 한 번씩 콜벨을 눌러 “나 죽을 것 같아요.”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담당간호사인 나는 병실을 방문했으나, 활력징후와 혈액검사결과는 전혀 죽기 직전의 환자가 아니었다. 주치의와 상의해도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정서적 지지뿐이었다. 끊임없는 콜벨에 지친 선배 간호사는 “환자분, 환자분이 지금 굉장히 본인을 중환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아닙니다. “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나는 다른 병실에 있는 중환(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 그 환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에 지쳤다. 시도 때도 없이 콜벨을 눌러 간호사를 부르고 교양 있는 말투가 무색하게 폭언을 일삼았다. 콜벨을 눌렀는데 빨리 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음압격리병실의 특성상 복도와 전실, 전실과 병실의 문이 차례로 열리고 닫히는 구조라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는 데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 한 간호사가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어서 중요도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느라 지연될 수 있는 점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환자는 내게 ”여기 선생님들은, 모두 살인마…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내가 적합한 말을 찾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콜벨을 눌러 물을 달라고 한 그녀의 요구를 약 5분 늦게 들어준 이유로 살인마가 되었다.
나 “음.. 이미 살인마라고 말하셨는데요. “
5호실 환자 “ 아니에요. 아직 말 안 했어요. 저 퇴원시켜 주세요. 죽을 것 같다고요!!”
나 “…. 환자분, 안 죽어요. 안 죽으니깐 걱정 마세요.”
5호실 환자는 투석을 시작하자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혈압은 낮아지고 심박수는 두 배로 뛰었으며, 산소포화도는 떨어졌다. 고유량 산소장치를 달고 환자를 진정시켰으나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눈에 초점이 없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진을 상욕으로 지칭하며 산소장치를 잡아 뜯었다. 산소장치를 뜯자 산소포화도가 60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긴급상황에선 환자의 활력징후를 되돌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단호하고 인류애 없는 태도로 산소장치를 계속 잡아 뜯는 환자를 제압해야만 했다. 의사와 보호자와의 상의 후 간호사들은 침상에 환자의 팔과 다리를 고정하는 신체보호대를 적용했다.
그날 퇴근을 하면서 선배 간호사와 5호실 환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 진짜 5호실은 마가 꼈나 봐요. 왜 멀쩡한 환자들이 들어와서 저렇게 안 좋아질까요.”
“그니깐.. 저 환자 더 안 좋아질 것 같다.”
이틀을 쉬고 돌아온 병동에는 5호실 환자가 없었다. 동료 간호사들에게 물어보니 어제 사망했다고 했다. 뭐? 아무리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단기간 안에 사망할 컨디션이 전혀 아니었는데. 전해 듣기로 내가 퇴근한 그날, 5호실 환자는 간호사가 없을 때 신체보호대를 한 상태에서 치아로 손에 있는 신체보호대를 뜯고 산소장치를 잡아뗐다. CCTV로 보고 담당간호사가 바로 다시 산소장치를 적용했지만 산소포화도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에는 인공기도를 삽입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되었고, 투석을 견딜 수 있는 컨디션이 안되어 혈압 저하 부담이 적은 24시간 지속적 정정맥 투석으로 전환하기 위해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려 하였으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잡은 중심정맥관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결국에 투석액 주입도 제대로 안되고, 환자 피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투석이 안되었고 노폐물 배출, 산증 교정이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5호실 환자에게 “안 죽어요, 안 죽으니깐 걱정 마세요.”라고 확신에 차서, 어쩌면 독기 어린 말투로 말했던 기억이 자꾸 떠오르며 나를 따라다녔다. 신규 간호사 때였으면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의 무게를 더 경각심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초심을 잃었나 보다. 괜히 짬 조금 찼다고,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말했을까. 좀 더 따듯하게 위로해 줄걸, 안심시켜 줄걸 자책하다 보니 마치 그 환자의 죽음에 내가 관여라도 한 양, 내게 그녀가 했던 말처럼 살인마라도 된 기분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생각의 비약이 너무 심한 걸 알지만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5호실에서 이 글을 쓰며, 어쩌면 그녀의 영혼이 아직 5호실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유치하고 미신적인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생각 없이 한마디를 내뱉은 간호사가 나름의 반성을 하고 있단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