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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Nov 01. 2023

플라워 킬링  문

착하고 똑똑한 남자의 어리석은 선택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이 세 이름만 듣고도 당연히 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영화표를 끊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한적한 영화관에서 넓은 스크린으로 보니 집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쾌적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영화에 대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이 관람했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거든요. 인디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관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했습니다. 광활한 토지의 이국의 풍경을 보니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배경음악이 귀에 쏙쏙 박히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인디언 부족이 이제 곧 다가올 슬픈 운명을 예감하면서 다소 어둡게 시작합니다. 하얀 사람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이제 그들의 정신도 말살될 위기인거지요. 조상님께 마지막 의식을 치르면서 땅을 파는데, 이게 왠걸 석유가 터집니다!!! 조상님의 돌보심이 있으신 걸까요? 아니면 독이 든 성배일까요?


2등 시민인 오세이지부족에게 생각치 못한 감당할 수 없는 부는 그저 달콤한 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향긋하고 아름다운 꽃일수록 나비도 꼬이고, 도 꼬이고, 파리도 꼬이는 법이죠. 그렇게 백인 "꾼"들에게 오세이지 부족들은 손쉬운 먹잇감이 됩니다. 금광을 찾듯이 백인들은 오세이지 부족 마을에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그들이 정말 순수하게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오는 것인지 사기를 치기 위해서 오는 건지, 세상물정 모르는 오세이지족들은 그 속내를 알 수 가 없습니다. 또는 안다고 해도 별수 없었겠지요.  


오세이지 부족의 후견인인 삼촌을 찾아온 어니스트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딱 봐도 그다지 영리하지도 교육을 잘 받지도 않아보였지만, 그는 자신을 잘 모릅니다.


삼촌이 슬쩍슬쩍 던지는 알쏭달쏭한 질문에 어리숙한 어니스트는 사람좋게 무조건 긍정을 하며 자신을 "착하고 똑똑하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소개합니다. 호남처럼 웃음지으며 근자감에 가득 찬 그를 삼촌인 "킹"은 흡족하게 바라보며 입에 발린 칭찬으로 잘 구슬립니다. 이렇게 영리하고 착한 어니스트는 삼촌의 말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부하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어니스트가 영리한 건 모르지만 의욕이 넘치는 착한 남자라고 생각했답니다. 어리숙함의 동의어가 착함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다음 장면에서 제 기대는 무참히 깨지며 우리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어니스트 버크하르트"는 "무지"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삼촌인 킹은 오세이지 부족의 후견인이자 친구로 그들을 보살핍니다.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그는 늘 딸처럼 아들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그들을 잘 보살핍니다. 인삿말은 항상 똑같죠: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니?" 따뜻한 미소로 어떠한 상황에도 자상함을 잃지 않는 그의 표정은 그러나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마치 미드소마의 한 장면 같았어요.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세이지 부족은 하나 둘씩 죽어가지만 2등 시민인 그들의 죽음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촌의 명령(?)과 같은 권유로 어니스트가 오세이지 부족 상속녀인 몰리와 결혼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렇게 착하고 똑똑한 남자는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며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가죠.


그는 자신이 정말로 착하고 영리하다고 믿은 걸까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체, 때때로는 알면서도 악행을 저지릅니다. 아마 생각따윈 하기 싫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생각할 수록 머리만 복잡해지고 감당이 안되었을테니까요. 그저 삼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촌의 말이 곧 정의니까요. 착하고 영리한 그에게는 무모한 용기조차도 없었습니다. 종교에 빠진 광신도 마냥 그는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며 자신조차도 파멸의 길로 이끕니다. 그의 어리숙함은 그의 욕망을 위한 그저 하나의 핑계거리였지요. 자신의 부인을 포함한 오세이지족의 고통은 그에게 후회나 반성을 동반하는 스스로의 도덕적 잣대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오세이지족은 자신들과 다른 2등 시민이었고 -애완견이나 가축처럼요-, 무엇보다도 그는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겠지만 이미 욕망에 지배당하는 장님이었으니까요.


부인인 몰리는 어머니와 자매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금치산자라는 사회 소수자라는 입장과 남편에 대한 사랑때문에 모든 부당함을 묵묵히 견딥니다. 남편이 주는 약을 받아먹으면서 어쩌면 남편인 어니스트가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고 연애 당시의 그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잃지 않았을지 몰라요. 그런 믿음이 자신의 죽음과 맞바꿀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너무나 지독한 사랑의 댓가였죠. 


이야기는 사필귀정의 순으로 흘러갑니다. 힘없는 오세이지 부족들에 대한 악행을 저지르면서 자신들이 전능하다고 믿으며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어니스트와 그의 삼촌인 킹은 법의 심판을 받지요. 오세이지 마을 밖에는 그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큰 힘을 가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몰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 사건은 옛날 이야기가 됩니다. 오세이지 부족은 여전히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소수민족이고, 어니스트와 킹은 출소 후 잘 살다 갑니다. 말해 뭐해요. 당한 사람만 억울한거지요.


저는 계속 아내와의 마지막 대면에서의 어니스트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니스트들이 있는지! 갑자기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정말 모르는건지, 아니면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건지, 몰리는 이 대화를 통해 그가 정말 구제 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믿고 싶었던 남편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어니스트는 출소 후 자신은 법에 따라 댓가를 다 치뤘으니 이제 다시 "innocent"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본 누구도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치렀다고 생각하지 않을거에요.  그저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 했던 오세이지족들이 저 세상에서만은 진정한 안식을 찾았길 바랄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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