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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식 Nov 17. 2023

손끝의 정성
    -묵-

                  

                                                   

 옛날 여인들에게 새삼 연민의 정이 인다. 날만 새면 그 힘든 가사를 어찌 다 해결했을까? 길쌈, 농사일, 게다가 어르신들 공경이며 자녀 양육, 집안 대소사 치루는 일까지 늘 하루해가 짧아 늦은 밤까지 발을 동동 거리며 집안일에 매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비하여 현대 여인들은 참으로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다못해 아이들 바짓단이 뜯어져도 가까운 세탁소에 맡기면 꿰매주니 바느질 할 일도 없다. 돈만 쥐고 나가면 온갖 장류가 매장 안에 즐비하게 진열되었으니 해마다 장을 담그는 번거로움도 잊고 있다.

 푸성귀들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시중에 판매하니 야채를 다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햇반까지 포장돼 나와서 사서 전자렌지 안에 넣고 돌리면 갓 지은 밥처럼 따끈하다. 이러니 끼니에 밥할 염려도 덜었다. 반찬도 반찬가게에 가면 입맛대로 골라 먹는 세상이다.


 이렇듯 세상은 여성들 삶을 더욱 편리하게끔 발전했건만 왜? 이리 가슴은 구멍이 송송 뚫린 듯 시리고 허허로울까? 필자 또한 현대를 사는 여인이니만큼 무한한 문명 혜택을 누리며 편하게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가슴은 늘 뒤척이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여 며칠 전엔 적으나마 옛 여인들의 솜씨를 흉내 낼 양으로 도토리묵을 쑤기로 했다. 마침 이웃에서 도토리 주운 것을 주었다. 그것을 방앗간에 가서 갈아 큰 자루에 넣고 물을 부어가며 치댔다. 그랬더니 황토색 물이 나왔다. 그것을 다시 고운체에 걸러 앙금을 가라앉힌 후 몇 시간마다 물을 갈아줘서 도토리 특유의 탄닌을 우러 냈다. 탄닌이 우러난 도토리 전분 가루를 가을 햇살 아래 얇게 펴 널어서 말렸다. 이 때 꽤 많은 량의 전분가루가 되었다. 그 전분 가루 한 컵에 물 일곱 컵을 부어서 도토리묵을 쑤었다.

 

 처음엔 도토리묵이 터벅터벅한 게 맛이 없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으나 이유를 몰랐다. 나중엔 그것을 쑬 때 소금을 조금 넣고 팔이 아프도록 계속 저었다. 도토리묵이 식은 후 맛을 보니 쫄깃쫄깃 한 게 너무 맛있었다. 

 옛날엔 도토리묵을 구황식이나 별미로 먹었다고 한다. 말이 별미지 내가 직접 묵을 만들어 보니 아낙네의 땀방울이 맺힌 귀한 음식임이 분명하다. 묵을 힘들게 쑤어보니 새삼 옛 여인들의 노고가 피부에 와 닿았다. 옛 여인들은 집안에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대접 했을 것이다. 혹여 손님 대접이 허술할까봐 갖은 음식 솜씨를 동원하여 손님 입맛을 맞추는 데 전력을 다 하였으리라.

 이즈막엔 어떤가. 아무리 ‘내로라’ 하는 집엘 찾아가도 안주인에게서 옛 여인들처럼 자신의 손끝으로 만든 음식을 대접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손님을 데리고 근처 이름 난 식당으로 직행하거나 아님 음식점에 전화 한 통화만 걸면 득달같이 기름진 음식들이 배달되어 오곤 한다. 

 

 바쁘고 번거롭다는 핑계만 대도 애교로 봐줄만 하다. 실은 필자부터 편한 생활에 길들여져 부엌에서 씻고, 다듬고, 볶고, 끓이는 일이 귀찮아진 것이다. 하지만 옛 여인들은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접대 하는 것을 미덕은 물론, 당연시 여겼으니 그런 넉넉한 심성과 따뜻한 손끝에서 우러난 별미는 우리 조상님들 심신과 얼을 지키는데도 일조 했을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외가엘 가면 겨울엔 손님 주안상을 위해 육포 ·약과· 밤초 ·대추초· 수정과 ·식혜 등을 외가 빈례賓禮 방에 늘 장만해 둔 것을 보았다. 여름철엔 수박 몇 조각을 파내어 오미자 우린 물로 화채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 하였다. 그도 없으면 시원한 우물물 한 바가지에 미숫가루와 꿀을 타 손님들께 대접하는 할머니의 솜씨를 눈여겨 본 기억이 새롭다.

 

 근동에서 살림 형편이 좋았던 외가댁 사랑채엔 그래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그때마다 할머닌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고 번번이 손님들을 정성껏 접대 했다. 흰 눈이 온 누리에 수북이 쌓인 겨울철엔 외가 사랑채에 손님들이 모여 윷놀이로 하루를 소일하곤 했다. 그럴 즈음이면 할머닌 야들야들하게 쑤어진 청포묵과 도토리묵을 갖은 양념을 다하여 무쳐서 주안상에 올렸다. 그 때 할머니가 무쳐준 청포묵, 도토리묵 맛을 흉내 내어 보지만 입맛이 변했는지 예전 맛이 아니다.


   할머니가 손님상에 내놓던 다식, 유과, 약식 등의 별식을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의 넉넉하고 덕스러운 심성이 그 시절 별미와 함께 가만가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주는 것만큼 꼭 되받아야한다는 이해관계 아래 이루어지는 접대가 대부분이다 보니 옛날의 후덕한 인심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필자라도 오늘 우리 집을 찾는 손님이 있다면  별식인 도토리묵을 후하게 대접해 보련다.★


* 위 글은 테마 수필집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에 수록된 글로써 사라지는 우리 옛 것을 조명하며 독서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이 내용에 대하여 뉴질랜드 교민지 '위클리 코리아'로부터 원고 청탁을 해와 그곳 교민지에 다시금 연재중인 글을 한 편 이곳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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