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는 무엇을 비우느냐보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한 삶의 양식이다. 처음에는 비우기에 주력하다 보니 흔히 무엇을, 어떻게 비우고 버리고 나누느냐에 치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있다.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한 책의 겉표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그 책의 저자만 앉아있는 사진이 실려있다. 다 비운 걸까? 나는 이 역시도 저자가 전하고자 한 의도는 다 비운 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빈 방과 대비시켜서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만나게 된 더 본질적인 가치. 즉 불필요한 군더더기에서 해방되어 좀 더 삶에 충실해진 자신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버리고 비울 것이냐는 무엇을 이 중에서 남길 것이냐는 질문을 먼저 하고 그 답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여기 옷장이 있다. 끝에서 끝까지 가득 찬 옷더미 중에서 이제 남길 것을 정한다. 그러면 나머지 비울 것들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여기서 한 사람이 지닌 물건에 대한 안목이 갈고 닦이게 된다.
처음에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그때 자신의 현재 일상패턴, 일, 전체 일과, 연중 특별 행사 등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을 빠르게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주로, 잘, 편안하게 입었던 옷들이 추려진다.
이때 옷의 가격이나 처음 옷을 구매했을 때의 동기 등은 배제하는 게 좋다. 옷은 일단 구매한 직후부터 더 이상 새 옷이 아니므로 초기에 지불한 새 옷 가격은 급속도로 가격이 내려가므로 고려대상이 될 수 없고 새 옷을 구매할 당시의 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그때의 내 생각, 기분도 변했을 가능성이 100%에 가까우므로 이 또한 이제는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
그럼, 단순하게 적용 가능한 기준은 뭘까?
흔히 적절한 옷차림을 말할 때 언급하는 T.O.P를 떠올리면 단순해진다.
Time: 여름인지 겨울인지? 계절별 옷.
Occasion: 어떤 분위기인가? 사적이고 편안한 자리인지, 격식 있게 갖춰 입어야 할 자리인지
Place: 여긴 어디? 집에서 입는 옷과 직장 혹은 업무 시 입을 옷인지
경조사 중에 어디에 참석하는지.
이 기준으로 남길 옷을 결정하면 좀 더 쉬워진다. 과감하게 비우고자 할 경우 여기에 몇 개만 남기고 다 비운다는 목표를 추가해도 좋다.
(예: 옷 30벌로 6개월 살아보기)
남기는 옷은 본인의 안목이 드러나는 최종 결과물이 된다.
디자인, 재질, 전체적인 느낌, 다른 옷들과의 믹스매치 여부, 관리의 용이함 등을 세심하게 따져가며 한벌, 한벌 옷을 선별해 가다 보면 본인의 선택의 경향성을 파악하게 되고 이는 이후에 다른 물건을 구매할 때도 반영이 된다.
나의 경우, 직장근무와 평상시 옷차림에 두루 활용가능한 옷들을 선별했고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캐주얼 정장 스타일의 옷을 선호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입은 내가 편안하고 여유 있으면서도 적당하게 격식의 느낌도 갖춘 옷들이 남게 되었다.
이전에 그저 당장의 필요나 기분에 따라 급하게 한번 입어보고 옷을 살 때는 잘 알지 못했던 나만의 스타일이고 안목의 발견이었다.
이제는 잘 사지는 않지만 혹시 필요에 의해 옷을 살 때는 예전처럼 옷 가게 전체를 빙빙 둘러볼 필요가 없다. 나의 필요와 스타일을 알고 있기에 그에 맞는 옷만 집중해서 보면 된다. 그리고 이제 어디에, 어떻게 입을지를 알고 있기에 디자인을 보는 눈도 훨씬 단순해졌다.
이에 더하여 한번 사면 오래도록 함께할 물건임을 알기에 재질, 이미 있는 옷이나 가방과의 조화까지 총체적으로 보는 눈까지 길러져서 선택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