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살짝 남아있는 듯 낮의 햇살의 한때는 때로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금세 선선하고 상쾌한 가을공기가 주변을 채운다.
해가 기우는 저녁이면 불어오는 바람은 꽤나 서늘하다.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포근한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계절. 동절기에 접어들었다. 커피가 참 좋은 계절이 왔다.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에 조심스레 모아 쥐고 가을을 통째로 볶아낸 듯한 고소 하면서도 씁쓰름하고 달콤한 신맛까지 품은 커피 향을 날아가랴 아쉬운 듯 천천히 음미할 때면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쉼'터가 된다. 늘 비슷해서 자주 그 멋과 맛을 잃어버리기 쉬운 일상의 아름다움들이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마음 가득 들어온다. 내 곁에 이미 가득한 다정한 삶의 순간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커피만의 매력.
커피는 내 하루의 '쉼표'이다.
디카페인 커피
가족들 첫끼와 청소 빨래까지 마치고 나면 점심 무렵이다.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싱크대위의 물기까지 제거하고 나면 집은 조금 차분해진다.
아이들이 각자 놀고 잠시 "엄마"소리도 잦아들면 커피를 준비한다. 디카페인 커피에 커피전용으로 나온 바리스타 귀리우유를 살짝 넣어주면 부드럽고 고소한 디카프 라테가 된다.
이제 곧 이른 비와 함께 우기로 접어들 이스라엘의 햇살과 서걱대는 가을 공기 속에서 커피를 즐기는 시간. 커피잔이 식어가며 그 짧은 시간도 같이 마무리된다.
짧고 따뜻한 휴식. 참 좋다.
아메리카노
서늘한 계절의 시간은 갓 내린 아메리카노의 따뜻함을 더욱 살려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깊고 고소한 향으로 먼저 만나는 아메리카노. 무늬 없이 간결한 흰 머그컵과 묵묵히 이 모든 잔잔함을 받치고 있는 나무컵 받침.
가만히 내려다본다. 빛과 그림자와 커피 향과 무형의 것들을 조용히 담아주는 유형의 사물들의 조화를 바라본다.
언제까지나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아늑한 정물화 같은 풍경을 눈에 담고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콜드커피
이스라엘에서 처음에 라테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뜨거운 카푸치노가 있지만 강렬한 햇살 아래를 걷다 보면 시원한 라테가 생각난다. 알고 보니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이스 라테를 콜드커피라고 부른다는 것.
투명한 잔에 가득 채워진 아이스 라테를 한 모금 마시니 등줄기의 땀도 식는 것 같다.
얼음 조각이 유리컵에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청량한 소리와 우유와 커피가 섞이며 천천히 빚어내는 크리미 한 캐러멜 색깔. 부드러운 맛까지.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아껴가며 마신다. 입안이 즐거우니 나누는 대화가 더 풍성해진다.
마트커피
아이들과 함께 나가는 외출은 순간순간 나들이에서 고단한 일터가 되기도 한다. 까르르 웃다가도 못 걷겠다 울기. 잘 놀다가 금방 같이 안 논다고 싸우기. 다 왔는데 거기도 절대 안 가겠다 버티기. 두 번 세 번 화장실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 하더니 길 한복판에서 급하다고 발 구르기. 이런 모든 '위급'상황에서도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것은 커피이다.
한 차례 아이들의 급발진 같은 요구를 해결해 주느라 진을 빼고 나면 미리 준비해서 가방에 넣어둔 마트커피를 꺼내든다.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는 커피와는 다르지만 달달한 맛으로 틈틈이 부족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