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나는 온라인 책방을 이용하여 책을 보며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고쳐야 할 습관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동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볼까 걱정하지만 습관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짬을 내지 않으면 나는 책을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핑계가 매일 하루 40분씩 책을 꼬박꼬박 읽게 해 주었다.
이 날도 나는 출근길 책의 재미에 푹 빠졌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은 <교양 고전 독서>라는 책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 도서를 옆에서 설명해 주듯 풀어낸 책이었다. 전날 트로이 목마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일지 <니코스코마의 윤리학>에 빗대어 설명하다가 끝을 내지 못하고 집에 도착하였다. 나는 일찌감찌 출근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흥미진진한 책의 내용에 나는 주변의 풍경도 소리도 모두 잊은 채 책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큰 굉음이 들려왔다. 그 굉음은 자꾸 나를 따라왔다. 가만히 소리에 집중해 보니 나의 바로 뒤에서 들렸다. 차 소리 같았지만 차 소리일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인도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장 차량이라 하더라도 그 차량이 내 뒤에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두려움을 가득 안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미세먼지 저감 차량'이 나의 왼쪽 차도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 앞을 보았다. 소리는 차도가 아닌 분명 나의 뒤에서 들렸다. 그 순간 무서움이 휩싸였다.
나의 왼쪽 귀는 청신경종양으로 청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러닌 왼쪽 귀에서 소리가 작게 들리고 오른쪽 귀가 크게 들리니 정확한 방향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의 나의 병으로 인한 불편함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이제 나는 정확한 위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사고가 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로 나는 책을 읽으며 길을 걸어가는 습관을 고쳤다. 길을 가며 주변을 살피지 않는 것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체감한 덕분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니 익숙한 출근길에서 아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비를 머금은 풀내음과 점점 초록색이 짙어지는 나무들, 그리고 여름임을 알려주는 매미와 풀벌레소리까지! 여기는 도시였지만 내가 지나가는 길은 오솔길 같았다. 이전까지 나의 출근길이 트로이 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매일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은 아주 색다른 일이었다. 매일 지나간 길이였지만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던 이름 모를 꽃들을 가만히 서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려본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 집중을 하자 나의 몸의 컨디션이 그대로 발끝으로 전해졌다. 오늘은 나의 몸 상태 맑음이다.
이렇게 나는 병을 얻고 병을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좀 더 곧게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지나가는 매미소리를 시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하루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도 온몸 가득 알게되었다. 이 걷는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사색에 잠기는 여유도 생겼다. 지금 나의 출퇴근 시간은 아무도 방해할 수없는 나만의 명상이자 힐링 시간이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을 줄은 아프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병과 또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주아주 행복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