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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0. 2023

잘 들렸는데 갑자기 안 들립니다.

장애이해교육을 하던 중 갑자기 귀가 안 들린다.

 유치원은 매 학기 별 1회, 1주씩 장애이해교육주간이 설정되어 다. 교육부에서 그 해 유아에게 교육할 내용을 선정, 관련 자료를 만들어 배부해 준다. 또한 각 유치원의 실정에 맞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교육을 다.  장애통합반 교사로서 장애이해교육은 1주일 간의 교육과정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다.


 우리 반에는 2명의 부분통합 유아와 1명의 완전통합 유아가  있다. 3월 입학식, 긴 코로나 시기를 지나 오랜만의 '입학식'에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자리였기에 많이 준비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강당 모임을 끝내고 교실에서 담임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중 아이 한 명이 교실에 가지 않겠다고 강당 한 복판에서 드러누웠다.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큰 무기력감을 느꼈다. 눈으로 아이의 부모님을 찾았지만 처음 만남에서 아이의 부모님을 바로 찾기란 어려웠다. 앞이 새까매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첫 단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첫 단추는 정말 잘못 끼워도 제대로 잘못 끼웠다.  1명은 교실 앞 복도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고, 한 명은 교실을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드러누웠다가 화를 내었다가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방해하였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몇몇 재원 유아들은 의자를 들썩거리거나 밀고 들어 올리며 장난을 쳤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준비해 간 PPT는 끝까지 슬라이드를 넘기지도 못한 채 "자료로 배부해 드리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로 끝냈다.


 뛰쳐나가고 싶었던 입학식을 끝내고 연임하는 유아의 부모님들이 내 손을 꼭 잡으며 "선생님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선생님 고생하실까 걱정이에요. 우리 아이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선생님 사랑 1년 동안 듬뿍 받았으니 선생님 곁에 있다면 잘 자랄 거예요." , "사진도 너무 많이 찍지 말고 선생님 몸부터 챙기세요. 많이 아파 보여요."라고 말하였다. 그 자리에 있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꼈는데 작년 1년간 다져놓은 부모님과 아이의 호흡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느꼈다.


 좋게 봐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안 좋게 봐주시는 부모님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왜 우리 아이가 통합반에 들어가 있느냐. 나는 그것을 동의한 적이 없다. 나는 반을 바꿀 생각이 없으니 장애 유아를 다른 반으로 옮겨달라."는 민원이 솟구쳤다. 대면으로도 전화로도 의견을 강하게 내었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운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반 아이들은 장애유아를 '못하는 아이', '방해하는 아이'로 인식하여 근처에 오는 것조차 꺼려하였다.


 그렇기에 장애이해교육은 아주 중요한 의미였다. 물론 일상생활 교육에서 장애이해교육을 아주 많이 녹여내기도 하였지만, 1주일간 다양한 장애와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알아볼 수 있으니 아이들의 인식 개선에도 부모님의 인식개선에도 꼭 필요한 교육이었다.


 그 일환으로 하모니카 앙상블 공연 관람을 보았다. 다양한 하모니카가 어우러진 음악회인데, 매년 듣는 공연이지만 들을 때마다 감동이 더하는 공연이다. 그런데 이날은 이상했다. 분명 입으로 하모니카를 부는 것 같고, 아이들도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 하모니카들이 있었다. 그리고 하모니카의 하모니가 모두 따로 놀고 찢어지기도 했다. 오늘 조율이 이상한가? 고개를 돌려보니 선생님들은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감상하고 있다. 손으로 양쪽 귀를 번갈아보며 막아보았다. 왼쪽 귀를 막으니 훨씬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 이 음악이었지. 이제야 하모니를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 또 다른 주제의 장애이해교육을 이어갔다. 이번 주제는 태어나면서 또는 갑자기 만나게 된 사고나 질병이 고쳐지면 병, 고칠 수 없다면 장애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게 된 친구들의 성장과정과 장애를 가진 엄마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들어보았다. 서로 다르고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중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꼭 영화관에서 듣는 소리처럼 타자화되어 들려왔다. 저번 주 주말 갔었던 워터파크에서 귀에 물이 들어갔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양쪽 귀를 다시 번갈아 막아봐도 이상하다.


 예전과 다른 귀 먹먹함에 내 몸에 집중해 본다. 수업을 하는 내내 내가 뱉었던 말들이 가슴에 콕 박혀온다.  불안감이 온몸을 감싼다. 다시 온 세상이 핑핑 돌며 구역질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가만히 앉아있음에도 어지럽고 입덧을 하는 듯 속이 울렁거렸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 셋째가 왔음은 아니길... 나는 아직 해야 할 것도 벌려 놓은 일도 많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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