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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4. 2023

응급실을 통해 입원 하라고요?

돌발성 난청 치료 중임에도 증상이 자꾸 나빠집니다.

 돌발성 난청으로 스테로이드제를 먹은 지 2일 차. 대학병원에서 다시 정밀검진이 시작되었다. 정밀검진 결과 다행히 약을 먹고 수치가 회복하고 있으니 좀 더 약물치료를 하며 지켜보자. 입원치료는 권장하지 않지만 유치원 교사의 특수성상 휴식을 할 수 없고 소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에 안전가료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장소가 집일 뿐, 입원치료를 한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휴식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지금 당장! 바로 휴식을 취하기에는 아직 방과 후 교사가 퇴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없는 동안의 나의 빈자리를 최대한 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서류도 정리하여야 하였다. 그렇게 나는 이틀간 출근을 더 한 후 출산휴가를 제외한 첫 특별휴가를 들어갔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집에 있으니 너무 아팠다. 우리 집인데 침대에서 일어나면 세상이 가로 세로로 뱅뱅 돌았고, 조금만 밥을 더 먹고자 하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은 채소와 과일류. 그것을 제외한 모든 음식은 속이 부대끼고 어지럼증을 더 느끼게끔 하였다.


 병가 1주일이 지나자 살은 3킬로가 넘게 빠져있었다. 수치는 점점 더 안 좋아졌고 딱 1주일만 쉬어야겠다는 병가는 2주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청력을 살리고자 고막주사요법도 시행하였다. 안타깝게도 나의 돌발성 난청은 나빠진 상태에서 90프로는 회복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10프로에 속했다. 속절없이 청력은 나빠졌다. 그 사이 몸도 마음도 약해져만 갔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났다. 그리고 화도 났다. 나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 외로워 눈물이 났고 같이 있으면 잘 들리지 않는 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눈물이 났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에 첫째 아이는 신이 났다.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아빠와 학교를 갈 때에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엄마와 학교 가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부러웠단다. 아주 천천히 엄마가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서 손잡고 이야기하며 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실 엄마가 어지러워 손을 잡고 아이의 발걸음이 아닌 엄마의 컨디션에 맞춘 발걸음였다.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오늘 쉬는 시간에 친구랑 그림을 그리는데 나랑 친구랑 짠 것도 아닌데 어몽어스를 그리고 색도 똑같이 칠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생각할 수 있지?", "오늘 풋살 하는데 내가 1골 넣었다! 엄마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주고 싶었어. 내가 1골 넣어서 우리 팀이 이겼어!" 하며 그날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기 위해 에피소드를 기억했다. 그리고 아빠와 집에 올 때 들렸던 편의점이나 놀이터를 구경시켜주기도 하였다. 자신의 삶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유일한 운동시간이자 힐링 시간이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에 부풀어 있던 5월 첫째 주, 대학병원 정기검진일이었다. 청력검사를 하며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대로 집에 가지 못할 수 있겠구나.', '나의 귀의 청력은 이렇게 점점 잃어갈 수 있겠구나.' 느껴졌다.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반대쪽 귀 가까이 몸을 틀어서 알려주시던 담당의를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잘 참고 있었는데 너무 이 상황을 버티기 힘들었다. 검사 결과는 예상처럼 현재까지의 상황 중 가장 안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어떤 후회도 남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봐요 우리. 오늘이 갑자기 떨어진 1일 차라고 생각하고요. 코로나 검사가 오전에 끝났어요. 내일은 또 연휴이다 보니 꼭 촬영해 보았으면 좋겠는 MRI도 시간 잡기가 어려워요. 다양한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응급실로 전원시 켜 드릴게요.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을 밟고 검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나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이라는 단어와 공간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하였다. 응급실 안에서 나는 응급하지 않은 환자였다. 혼자 갔던 병원이었고 아이들이 있어 보호자가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혼자 응급실 안에서 막연한 기다림을 이어갈수록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검사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검사를 하였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검사는 체온검사였다. 체온계를 귓속에 넣고 열 측정이 끝나기까지 그 어떤 기계음도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 씩씩하게 그렇지만 마음이 무너진 채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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