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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5. 2023

휴식과도 같았던 입원생활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 혼자 있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입원이 결정되고 난 후 나는 늘 혼자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었기에 신랑이 함께하기도 어려웠다. 조부모님께 맡기고자 하였다면 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도 아니었고, 보호자도 코로나 검사를 하고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이런 모습을 가족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으니 나만 생각할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다. 병실 안에서는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 마느냐 딱 두 가지뿐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아이들에게 오늘은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오늘 무슨 책을 읽을지 무슨 생각을 할지만 고민하면 되었다. 아니 그 마저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하면 되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정말 천국인가 싶었다. 어지러움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하루종일 누워 있다가 잠이 오면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 재미도 하루가 채 가시지 않고 시들해졌다. 다양한 이유로 미뤄두었던 책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하기도 하였다. 명상음악을 들으며 명상도 하고 남는 것이 시간이니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도 돌렸다. 입원 기간이지만 하루에 한 번씩 팩도 하고 두 번씩 샤워도 하였다.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며 말려주는 머리는 병원생활 중 행복감을 가져와 주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분명 행복에 젖어 온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데,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울었다.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또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가, 다시 새벽에 잠이 깨 다시 우는 시간을 반복하였다. '나 지금 왜 울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왜 우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래서 왜 우는지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울분을 토하듯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고 맞이한 아침은 또다시 차분하고 고요함을 가져와주었다. 그럼 또다시 명상과 독서 필사를 하고, 감정수업 강의를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혼자 울고 싶었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 울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며, 울 시간에 뭐 하나라도 더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울면 지는 것 같았고 울면 내가 너무 나약해 보이는 것 같았다.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꾹 참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독하게 몰아세웠었다. 하지만 한번 울음의 물꼬가 트이니 수도꼭지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눈물까지 끌어올리듯 터졌다. 그렇게 나의 눈물 물탱크는 입원 기간 동안 모두 비워졌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울음의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나의 머릿속과 마음은 차분해졌고, 이제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어떤 시간이 나에게 평화를 가져오는지 말이다. '의무감'에 한다고 생각했던 글쓰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어지러워 컴퓨터를 멀리하고 나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에너지를 채운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책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오늘을 살아가야 할 힘을 주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점검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계획을 변경하는 시간, 그 시간은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지금 현재의 내가 소중해졌다. 미래를 위해  갈아 넣었던 현재는 내가 아프고 나니 모래알처럼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올해 미래를 위해 계획하였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내 곁을 지키지 않았다. 처음으로 "제 상황에 무리가 갈 듯하여 못하겠습니다."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보았다. 나는 꽤 유능하고 똑똑하게 일하고 있다고 자부하였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저 NO를 못하는 헛똑똑이일 뿐이었다. 몇 년 동안 했던 개발위원도 올해 처음 하기로 한 모니터링단도 못하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교직생활은 앞으로 30년이 더 남았고, 지금 일 년 주저앉는다고 내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주저앉지 않으면 나의 미래는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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