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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Teacher Jul 16. 2023

내 몸의 종양을 발견하다

더 이상 이비인후과 치료가 불가하니 퇴원을 결정하다.

  돌발성 난청으로 입원을 한 지 3일 차 아침, 나는 입원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언제 퇴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퇴원을 하고 나면 이 시간이 너무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도, 나의 생체리듬에 맞는 휴식과 움직임도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이상하다. 매일 시간에 맞춰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는데,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주사가 오지 않는다. 지금 딱! 씻고 싶은 시간인데 말이다. 스테로이드제는 한번 맞으면 30분~1시간가량 걸리며, 약간의 혈관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누워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이 좋다. 그날의 담당 간호사가 나의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스테로이드 주사는 없었다.


 "제가 입원할 때 1주일 동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다고 담당 주치의에게 안내를 받았는데, 오늘 아침은 스테로이드제가 없나요?"

"안 그래도 차트를 보니 그렇게 오더가 내려왔었던데, 오늘 갑자기 취소되었어요."

"왜요? 나는 아직 낫지 않았는데요.... 왼쪽 귀가 잘 안 들리는데 이제 차도가 없는 건가요?"

"그렇다고 취소하지는 않을 텐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이유가 궁금해요. 왜 안 맞아도 되는 건지 말이에요."


 평소 같으면 그냥 확인만 부탁드렸을 텐데, 그날따라 불안한 긴장감이 온 병실을 감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매일 아침의 똑같은 일과 중 하나가 없어지니 더 불안함을 느꼈다. 이유가 꼭 알고 싶었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하다면 얼른 퇴원 준비를 하거나, 고농도 산소치료를 하거나 다른 방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분 뒤 스테로이드 주사를 가지고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스테로이드 주사가 왜 빠졌었나요?"라고 묻는 나의 말에 간호사는 아주 아리송하게 대답했다.

"맞아도 안 맞아도 의미가 없기에 취소했다고 해요. 그런데 환자가 원한다면 맞는 쪽으로 하자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저도 정확히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곧 직접 올라와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다고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고 있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맞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언제 주치의가 올라온다는 말인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이 불안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지금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다. 더 많이 감정 수업을 듣고 명상을 하고 책도 읽고 불안감에 글도 계속 적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 시간은 아주 더디게만 흘렀다.


 4시가 넘어가자 주치의를 만나기 전, 후 문진과 검사를 진행했던 의사가 찾아왔다. "스테로이드를 맞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시다고 말하셨다고요."라는 이야기로 말문을 떼는 의사는 큰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돌발성 난청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을 합니다. 하지만 이유를 명확히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중 하나의 이유를 찾기 위해 MRI 검사를 합니다. MRI 검사 결과 청신경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청신경종양, 청신경 조총이라고도 말하는 병입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병이기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재 시간부로 신경외과 진료를 받게 됩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더 이상 치료를 해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내일모레 퇴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전에 신경외과 교수님을 만날 수도 있고, 이후 외과 진료를 예약하셔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주 명확하면서도 모든 감정을 배제한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다. 이제는 울음탱크의 눈물이 씨가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의사 앞에서 오열을 하였다. 병원에서 혼자 입원하여 모든 과정을 혼자 버티고 있는 나는 의료인들의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는 존재였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나도 사실 귀에 이명이 있어요. 1년이 넘어가니까 이제는 내가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그냥 내 일상 중 하나예요. 위치도 크기도 내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만 믿어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믿어봐요. 신경외과 교수님들과 이비인후과 주치의도 MRI를 확인했어요. 그러느라 늦었어요. 괜찮을 거예요. 너무 놀라는 마음은 알지만 지금처럼 씩씩하게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하며 위로하였다.


 그날 밤,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어 뜬 눈으로 지새웠다. 오늘 하루는 편안히 자라며 링거줄도 빼주었다. 그러며 담당 간호사는 묵묵히 손을 잡아 주었다. "간호인은 감정에 동요되면 안 되는 거 잘 아는데, 오늘은 좀 힘드네요." 하며 함께 울어주셨다. 매일 혼자 울다가 옆에 누가 함께 울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다음날은 주치의가 다시 방문하였다. "많이 놀랐죠? 돌발성 난청으로 MRI를 촬영하면 흔히 발견하는 종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발견하지 못하는 종양도 아니에요. 너무 자책하지 마요. 청신경종양은 생활습관병이 아니에요. 그러니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경외과 진료는 받겠지만, 이비인후과 협진이 필요할 때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협진이 필요하다고 하면 꼭 제가 있는 시간에 들려주세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병의 원인을 알았으니 치료 방법도 이제 명확해진 거예요."라며 손을 잡아주었다.

  입원기간 동안 울만큼 울었다. 위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받았고, 너무 다양한 사람들에게 힘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징징거리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그 가족을 위해 내가 무너지면 안 되었다. 억지로라도 마음을 일으켜 세워야만 하였다. 속상하고 힘들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퇴원을 하면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병은 나의 몸에 있는 것이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병은 이렇게 사고처럼 발행했고, 내가 울고 있는다고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퇴원하기 전 나는 내 병에 대해 너무 알고 싶었다. 이제야 내 몸과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다. 청신경종양에 대해서 검색도 하고, 다양한 뉴스와 논문 자료도 찾아봤다. '뇌종양투병하는 사람들' 카페에도 가입하여 다양한 사례와 예후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렇게 알게 된 대한민국의 청신경종양 관련 교수님 이름을 다시 검색하고, 병원 방문 예약을 하였다. 불안하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많은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빨리 마음을 잡는 것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낫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6일 동안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과 퇴원 후 내가 해야 할 일을 목록화하고 너무나도 나답게 퇴원하였다. 발병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업무에 대한 일이 빼곡한 것이 아닌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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