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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Dec 21. 2023

할머니의 부치지 못한 생일카드

내리사랑이니 어쩌겠어요....

오늘은 할머니의 의 생일이었다.


지난주에는  할머니께서 자주 가시는 마트에 같이 서 우유랑 커피크림을 다.

계산하려 계산대로 가는데 할머니께서 카드코너 앞에 서 계셨다.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시냐고 여쭈어보니 며칠 있으면 따님 생일이라고 예쁜 카드를 하나 사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딸의 생일 축하' 카드가 가득한 코너 앞에서 이런저런 카드를 보셨다. 

미국엔 카드 코너가 여러 파트로  분류되어 있다.

 옆에 서 있다가 고급스럽고 예쁘고 그러면서도 이미 쓰인 글씨가 많지 않아서 글 쓸 곳이 많은 것으로 주문하시는 대로 골라서  찾아드렸다.

하시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셨다.

대신 써 드릴까요  했더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그렇게 준비한 카드는 쓰지도 않고 부치지도 않으셨다.

카드를 사 온 후에 아드님과 통화를 하신듯한데... 누나가 이번 생일에는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했다고....  나도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며 독한 년이라고  화를 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사춘기에 접어든 손녀가 무슨 이유인지 죽고 싶다고 약을 먹고 난리를 친 상황이니 할머님의  따님은 그 일만으로도 맘이 벅차고 힘들 테고  자신의 생일 따위엔 신경 쓸 여력조차 없을 것이다.


할머닌 따님 생일인데 전화도 못하고 연락마저 없으니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으시고 하루종일  우울해하시며 한숨이 깊었다.

내심 이런 특별한 날의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딸과 자연스레 화해도 하고 적어도 연락이 닿게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신 듯했다.



오후에 아이들 라이드 하러 보통 2시쯤에 할머니댁에서 나온다. 오늘은 공무원들이 쉬는 날이라  아이들 아빠가 직접 데리러 갈 수 있어서  내가 라이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할머니께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고 울적해하시는 할머니와 좀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시며 기분도 안 좋으니  '정복자 펠레'라는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하셨다.

"와 오늘도 라라극장 오픈이에요? " 라며 할머니 곁에 누웠다.


 남편이 출장 갈 때면 오후시간에 짬을 내어 할머니께 들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 영화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가끔 좋은 영화를  함께 보자고 하신다. 해서 난 할머니께  '라라극장'이라는 간판을 하나 달아드렸다.

함께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덕분에 난 좋은 영화 한 편도 볼 수 있었다.

이미 영화를 몇 번 보신 할머니는 중간중간 주무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저녁까지 함께 먹고  할머니 기분이 좀 풀어지신 것을 보고서야  난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풀어지셨다기보단, 그렇게라도 속상한 마음을 잠시 잊으시길  원했는데..... 가끔 새어 나오는 한숨과 우울한 표정, 가만히 바닥을 내려보실 때면  여전히 속상해하시는 할머니의 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그렇게 정성스레  고른 생일카드를 할머니는 정작 한마디도 쓰지 못하고 화장대 위에 던져두셨다.

언제쯤 이 싸움이 끝날지.....


덩그러니 놓인 생일카드가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처럼 처량하고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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