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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미곰미 Dec 26. 2023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지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것은...


 요즘 신나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 정말 너무 많아!'를 외치며 감탄하며 보는 프로그램이다.  숨 쉬듯, 말하듯 노래하는가 하며, 때론 목에 서슬 퍼런 핏대를 세우며 붉어진 얼굴로 열창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가히 그 열정에 압도당할 때도 있다. 조용히 말하듯 토해놓는 노래에 가끔 그들의 사연까지 더해지면 숨죽여 노래를 듣게 되고 소름까지 돋고 가끔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해서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때가 있다.


지난 편에서는 한 중년의 여가수가 작년에 엄마를 여의고 나서 그 마음을 담아 노래를 했다. 노래를 다 부른 후에 심사위원들의 평가시간에 백지영 심사위원이 한 말이 내 맘에 남았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지라.... 저 맘을 내가 너무 알겠어서....'

그러면서 그 심사위원도 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 말에 나도 울컥하고 말았다.


사진출처 namu.wiki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키우다 보니

엄마에 대한 감정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고마움은 딸을 낳을 때 잠시든 생각이었고 그 이후론 줄 곳 섭섭함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아이재롱을 보다가도, 아이밥을 먹이다가도, 아이가 커 가는 걸 보는 내내 울컥울컥 그 섭섭함이 몰려왔다.

' 아무것도 못해도, 잘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엄마도 우리 볼 때 이런 맘이었을까? '

알고 있다.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여섯이나 되는 자식 키우느라 거기다 홀시어머니까지 모셔야 했고, 독자이신 남편까지 모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에 느껴지는 섭섭함의 갭이 너무 커서 오히려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게 더 힘들었다.

상담을 공부하는 내내 그 이후로도 제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감정이기도 하다.


이건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지 딸들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동생은  '엄마? 누구? 오빠 엄마? 우리 집 아들들 엄마?'라고  되묻기도 한다. 때로 자라면서 묵힌 섭섭함이 더해질 때면 ' 내는.... 엄마 없다'라는 말을 넋두리하내뱉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딸들은 자랄 때도 늘 우선순위인 오빠와 남동생한테 밀렸고

머리 큰 이후로 줄곳 엄마한테 무언가 받은 기억이 없어서일 거다.

일찍 취직해서 회사 다니며 모은 돈으로  결혼하고, 그전에 엄마가 급하다고 빌려달라고 하면 그 돈은 여지없이 오빠한테로 가고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경제적인 독립이야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일 수 있어 받아들이기도 어렵지 않다.  

그 밑에 깔려있는 정서적인 결핍이 더 문제였다.

어쩌면 동생이 농담처럼 하는 말에 우린 함께 웃었지만 함께 가슴으로 울고 있었을지 모른다.


고생하신 엄마를 향해 뭐라고 원망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나에게도 너무 필요했던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따뜻함을 더듬어 찾기도 힘들어서  저런 농담인듯한 진담을 토해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에 부모님이 오셔서 지낸 3개월 동안 난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여행을 모시고 다니는 일도  행복했다. 가끔 남동생 여자친구얘기로 날 섭섭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두 분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거 같다. 가끔은 '이걸 내가 아닌 오빠가 해드린다면.... 남동생이 해드린다면 더 좋아하실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두 분의 마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고 나는 그렇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좋은 기억을 갖고 싶은 나는 일부러 아버지께 부탁드려서 아침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달라고 했다.

처음엔 할 줄 모른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계시는 동안 내내 아침마다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아서 종이 필터를 끼우고 물을 붓고 나를 위해  커피를 내려주셨다. 그렇게라도 해서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결핍을 보상받고 싶은 내 마음속 어린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고 해 준 게 없어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씻어드리고 싶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엄마에겐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맛있다며 나물 무치는 정도만 가르쳐달라고 하거나 여기엔 뭐 넣으면 더 맛있는지를 여쭈어보는 정도였다. 남들은 결혼하면 엄마가 김치도 담아주고 친정 갔다 오면 손에 반찬이 한가득이라는데 그런 기억이 없는 난 그렇게라도 엄마와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  그저  좋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그 말에 울컥하고 공감은 되지만, 난 도대체 어떤 엄마가 필요한 걸까? 하고...

어떤 엄마가 필요해서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서러워하고 섭섭해하는지를 생각하며 그 말과 그때의 감정을 곱씹어 보았다.

이상적인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되는 그림은 아가를 품에 안고 사랑스러운 미소로 바라보거나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우는 아이를 두 팔 벌려 안아주며 토닥이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너무 이상적인 걸까?

 

존재만으로 온전히 수용받고 환영받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엄마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기대하기 때문일 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병들어가는지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사랑과 받고 싶어하는 사랑은  그가 누구이든지  어떠한 모습이든지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고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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