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회복지사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만나 소통한다.
내가 주로 듣는 말은
"힘들다"
"어렵다"
그런데 누군가 재밌는 질문을 한다.
"당신은 친구가 많아요??"
"의지할 사람이 있어요?"
한참을 생각한다.
‘나의 친구? 내가 의지할 사람?’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본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덕분에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신앙심은 없었다.
그래도 교회는 좋은 놀이터였다.
논두렁에서 개구리 잡는 것이
가장 재미있던 나
나의 장난은 어른을 힘들게 했고
옷은 항상 낡고 냄새났다.
이런 애를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만큼은
이런 나를 누구도 꾸짖진 않았다.
그렇게 난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나도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난 어린 시절의 놀이터를 추억하며
종교색이 짙은 대학에 입학해
익숙하던 공간에 자주 방문했다.
하지만 난 조금은 바뀌어있었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땡전 한 푼이 아쉬웠던 청년
난 더 이상 더럽고 짓궂은 아이가 아니었지만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다.
‘왜 유독 나에게 이런 일들이....’
당시의 심정을 대변하듯
나의 말과 행동은 남의 마음을 긁고 흔들었다.
때문에 내 일상은 외로워졌다.
어린 난 단지 주변인의 인기를 끌기 힘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난 주변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즈음 내게 A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 푼이 아쉬워 아침, 저녁 돈 되는 일은 다 찾아다닌 덕에
생활은 불규칙하고 굶고 다니던 청년이
휴일엔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교회 구석에 쭈그려 졸고 있을 때면
A는 항상 내게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뭐라도 먹고 왔냐?”
그는 항상 내 배를 채워주었고
절대 혼자 있게 두지 않았다.
내가 며칠 나타나지 않을 때면
숙소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귀찮을 정도로 불러댔다.
나는 이러한 ‘배려’가 가끔 부담스러워
귀찮은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A가 싫지 않았다.
“쟤 괜찮은 놈인데 오늘 좀 이상하네요....
좀 저러다 말 겁니다. 제가 말해볼게요.”
A는 이유 없는 나의 분노와 짜증을 본인이 받아 냈다.
난 그가 항상 나와 함께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A를 만나기 힘들었다.
이유는 참 다양했다.
"몸이 안 좋아.... 빨리 들어가 쉬어야겠어...."
"일이 있어서 서울에 와있어...."
그렇게 두 어달이 지났고
간간히 연락만 될 뿐이다.
궁금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금 지나고 나면
여전히 내 방 문을 두드릴 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연락은 받질 않고
메시지만 한통 와있다.
“야 교회 가서 기도 좀 해주라.. 좋은 데서 만나자...”
무슨 말이지?!
하지만 그는 나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A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급성으로 몸에 퍼진 암세포
A가 날 떠난 이유였다.
손을 쓸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고
A는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인들은 A와 각별했던 날 걱정했다.
그래서 A의 사정을 내게 알리지 않았다.
그 배려로 난 A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마지막 사진만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의 세월이 지났다.
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사회복지사로 생활하고
여러 사람과 소통한다.
난 그때와 조금은 변해있다.
하지만 여전히 A가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 나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있었어”
A는 아마 나의 ‘힘들다’는 표현을 듣고
관심을 갖고
이해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다른 사람의 ‘힘들다’는 표현을 듣고 있다.
A는 먼저 천국의 계단을 건넜지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어떤 사람에겐 A와 같은 사람이 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