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람을 대면하는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평소의 나는
가장 먼저 타인에게 비치는
외모엔 영 신경 쓰지 못한다.
우선 나의 외모는 이러하다.
작은 키와 정돈 안된 파마머리
둥근 얼굴과 진한 눈
아웃렛 매장의 이월 상품으로 구성된
싸고 편안한 후드티와 청바지
그리고 낡은 운동화
어느 정도 활동성이 필요한 직업임을 고려해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후드티와 운동화, 헝클어진 머리를 보면
내가 격식보단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쯤은 금세 알 것이다.
급전이 필요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쥐꼬리 만한 급여 덕분에
여건이 좋아졌음에도
비싸고 좋은 물건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최저시급 언저리의 급여로도
적금 통장엔 돈이 모여간다.
좋게 봐줘서 수수한 것이
편안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안 좋게 본다면 후줄근하고
만만해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날 보고 잔소리를 쏟아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래된 습관은 잘 바뀌지 않고
무엇보다 나에겐 이게 편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가장 아끼는 물건이 하나 있다.
한쪽 손에 빛나는 금반지
평소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에서 혼자만 빛나는 물건이다.
눈에 띄는 만큼 사람들은
나의 손가락에 관심이 많기도 하다.
"오..! 뭐예요??"
"무슨 의미가 있어?"
"진짜 금이야?"
"결혼하신 거예요?"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굳이 찾으라면
나의 물건이라 소중한 정도?
평소 충동적인 지출은 하지 않지만
어느 날 돌아온 나의 생일
돌반지도 없는 나를 위한 금붙이를
셀프로 선물한 것이다.
한동안은 값비싼 물건을 잃어버릴까
집 한구석에 전시만 해두었지만
이젠 익숙해져 없으면 손이 허전하고
누군가 이 물건에 관심을 보여도
시큰둥할 뿐이다.
‘역시 모든 것은 익숙해지구나...’
어느 날
매달 진행되는 월례회의에 참여한다.
내 손의 금붙이처럼
이젠 너무나 익숙했던 행위에
평소처럼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옆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깨우듯
인사차 속삭인다.
“좋은 눈을 가졌네요.”
“네,,,? 예,,,??”
‘갑자기 무슨 말이지??’
졸던 나는 갑작스럽고 애매한 말에
깜짝 놀라 얼버무린다.
“아,,! 갑자기 놀라셨나 보네! 눈이 예쁘시네요!”
매월 진행되는 월례회의 덕에
다른 근무지에 소속되었지만
얼굴정돈 알고 지내던 누군가였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미안한 듯 그는 빠르게 말을 잇는다.
“처음 잠깐 봤을 때
남자 눈이 말이야
속눈썹도 길고 예쁘더라고요!”
그러고는 몇 분 간
목소리가 어떻고
웃는 건 어떻고
참 디테일하게 칭찬도 하신다.
당연히 칭찬이니 기분 나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고맙지만 민망하고 당황스럽다.
평소 곱상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이런 칭찬을 들을 일도 없고
편안하고 추레한 옷차림 때문에
나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는 사람은 적다.
누군가 후줄근한 차림을 지적해도
혼자 빛나던 금가락지에 관심을 가져도
이제 한 귀로 듣고 흘릴 뿐이었다.
심지어 나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나에 대한 것들
‘이분은 언제 날 이렇게 보신거지..?’
의아하던 찰나에 내 마음을 읽기하로 한 것인지
그는 한바탕 웃는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더니 한마디를 남긴다.
"자세히 보면 다 봐져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꽤나 중요한 의미가 된
절대 반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절대 반지보다 인물들이다.
작지만 강했던 난쟁이들
훤칠하고 하얀 요정들
용감한 인간과 호빗들
지금 나에게도 이 반지가 중요 하지만
내가 소유한 물건일 뿐이다.
일면식 정도 있던 분
내 손가락에 혼자 반짝이는 물건이 먼저 보일법도 한데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것을 기억에 남긴 그는
다른 곳에서도 사람을 먼저 보고 기억할 것 같다.
아직도 내 손엔 반지가 끼워져 있고 소중하다.
여전히 많이들 관심을 갖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물건보다
나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대답하기도 수월하고 더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