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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Mar 25. 2024

지중해에서만 자란다고?:
올리브

‘지중해 지역’이란 어디까지가 경계일까? 올리브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선이 그 경계다. 

지중해 사람, 지중해 식단 등은 원칙적으로 그 경계선 안을 말한다. 

“지중해 사람들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가꾸는 법을 배우면서 야만에서 벗어났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기디데스의 말이다.  올리브는 사는 경계만 정해준 것이 아니라 문명으로 이끌기도 한 위대한 작물인 것이다.


올리브는 지중해 문화권을 상징한다. 고대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는 승자에게 

올리브 가지와 잎을 엮은 관을 씌워 주었다. 구약 성경의 등장하는 노아는 대홍수가 끝나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온 것을 보고 땅이 말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비둘기와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이다. 



지중해 날씨는 겨울이 되기 직전부터 변덕스러워진다. 화창했던 날씨가 10월에 바뀐다. 

동쪽 대서양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몰려오면서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폭풍우가 닥쳐와 

‘사나운 바다’가 된다. 이때가 되면 고대 지중해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가는 길에 난파를 당해 6개월 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제노바의 노련한 도리아 제독은 이 계절에 절대 배를 움직이지 않았다. 

해양 강국 베네치아는 16세기 후반까지 11월 중순-1월 중순 사이 항해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선적해야 하는 화물이 준비되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바다로 나섰다. 그리고 운명의 여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지구 전체를 통틀어 겨울에 비가 오는 곳은 지중해 한 곳밖에 없다. 어디서나 비가 오는 계절은 여름이다. 

그래야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다. 열기와 습기가 모여야 작물이 잘 자라는 기름진 토양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중해에서는 습기와 열기가 겹치지 않는다. 여름에는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겨울에 부슬부슬 온다. 

그래서 지중해 땅은 메마르고 척박하다. 라벤더, 타임 같은 향초가 자라고, 오렌지, 레몬, 복숭아, 체리 같은 과실수가 자라지만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는 울창한 숲은 없다. 나지막한 덤불숲뿐이다.


바짝 말라 건조한 땅에 비가 오면 육지에서 말랐던 강들이 부풀어 넘치며 세차게 흘러내린다. 

아프리카 쪽 해안에서는 메마른 사막에 사람이 떠내려 갈 정도로 홍수가 나기도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 출신 유명한 알제리 시인 한 사람은 사막에서 익사했다. 

평소에는 바닥만 보이고 말라 있던 건천에 갑자기 흐르는 급류에 휩쓸리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건조한 지역에서는 일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몰아 떨어지는 빗물을 가두었다가 대추야자 농사를 짓는다. 말라 있던 좁은 도랑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흘려보내다가 막고 또 다른 도랑으로 물을 흐르게 하는 일은 

얼마나 고된 것인지! 신이 비를 조금씩 나누어 내려 주시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올리브 나무다. 


올리브 나무는 별로 아름다운 나무가 아니다. 

키도 크지 않은 데다 멀리서 보면 거의 회색에 가까워 싱싱한 느낌이 없다. 

잎이 솜털에 덮여 있기 때문인데, 바로 그 솜털에 물을 저장한다. 솜털에 저장된 물! 꼭 짜면 한 컵이 되려나? 물론 주 저장 탱크는 나무줄기다. 그 물로 일 년을 버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의 ¾이 지중해에서 생산된다. 토질이나 일조량에 따라 열매가 달라져 종류가 많다. 열매는 녹색이었다가 보라색이 되었다가 검은색으로 바뀐다. 녹색에서 바뀌지 않는 종류도 있다. 

열매가 익으면 성긴 큰 빗 같은 도구로 위로부터 쓸어내려 바닥에 떨어지게 해서 모은다.



나무에서 따낸 열매는 너무 씁쓸하고 떫어서 그냥 먹지 못한다. 소금물이나 알칼리 물에 절여야 한다. 

지중해 일대 시장에는 절인 후에 온갖 종류 허브로 맛을 낸 올리브들이 쌓여 있다. 

입 속에 맛의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을 ‘감칠맛 있다’고 표현하는데, 올리브야 말로 그렇다. 

열매를 먹고 나면 가볍고 상쾌한 고소함이 입 속에서 감돈다. 깨를 짜서 만드는 기름과는 또 다른 고소함이다.     

지중해 사람들에게 올리브는 다용도였다.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등불을 밝히는데 쓰기도 하고 

양털로 짠 긴 망토에 먹여 방수 천으로 만들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용도는 물론 식용이다. 

육식 지대인 북부 유럽에서는 돼지기름 덩어리나 버터로 요리를 하지만 남부 지중해 음식의 기본은

식물성 올리브유다. 빵에 적셔 먹고, 샐러드 소스로 만들어 야채와 섞어 먹고, 

구운 생선이나 고기 위에 뿌려 먹는다. 모든 것이 올리브유로 통한다. 

겨자, 레몬 즙과 섞어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냥 야채 위에 휙 뿌려도 맛이 신선하다.   


올리브는 씨와 과육에 모두 기름이 있어 통째 눌러 짠다. 

한참 그대로 두었다가 위로 뜨는 기름기만 걷어낸다. 저온에서 처음 짠 기름을 ‘버진’ 올리브유라고 부르고, 여러 처리를 거치면 ‘퓨어’를 붙인다. ‘버진’과 ‘퓨어’라니? 두 단어가 모두 순수함을 경쟁한다. 

그래도 지중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버진’이다. ‘퓨어’는 화학적으로 처리해 정제했다는 뜻이다. 

처리해 깨끗하게 했으니 ‘퓨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올리브유는 제조 날짜를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원산지가 어디인지 보아야 품질을 판단할 수 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과 같은 애매한 표시도 있는데, 내용물을 보장하지 않는 표시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것은 올리브를 잘 모르는 북유럽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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