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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Apr 22. 2024

‘부리 망을 씌운’ 시끄러운 술
샴페인

포도주를 베이스로 파생한 알코올들이 많다. 

단 맛이 끈적한 포트 와인도 있고 토카이 와인과 에게르 와인도 있으며 코냑도 있다. 

그중에서 압권은 샴페인이다. 연한 금빛 액체가 고급스럽다. 

병을 따면서 나는 ‘펑’ 소리는 좋은 일을 축하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황금 액체 속에 작은 공기 방울이 줄지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상큼하고, 

입 안을 가볍게 톡 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면 식도를 약간 자극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샴페인은 식전이나 디저트 때 그리고 특별한 자리에서 마시는 11도의 약한 술로 

프랑스인들이 ‘삶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럭셔리의 한 품목이다. 매년 4억 병이 생산되는데, ¾이 프랑스 밖으로 수출된다. 19세기에는 영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즐겼지만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인의 럭셔리가 되었다. 


파리 사람들은 ‘샴페인’이라는 단어가 너무 진부하다고 하며 ‘공기 방울(bulles)’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공기 방울’을 마실까 하면 놀라지 말고 샴페인으로 알아들으면 된다.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인 샴페인은 다른 지방에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샴페인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오직 프랑스 동부 석회암 지대 샹파뉴 지방(Champagne)에서 생산되는 것만 ‘샹파뉴’, 즉 영어 발음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상표권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였던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샹파뉴 지방 안에서도 지정된 321개 마을에서 자라는 세 품종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가 아니면 안 된다. 프랑스 전체 포도밭 면적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경계를 벗어나면 아무리 토질이 같고 기후가 같아도 샴페인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같은 종류 포도를 키워 비슷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도 소용없다. 반값에 팔아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그 엄격한 기준에 대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샹파뉴는 포도 생산 북위 상한선에 있는 지방이라 남부 프랑스처럼 햇빛이 풍부하지 않다. 포도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수확한 포도로 술을 담그면, 가스가 생겨 술통이 터졌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이상하게도 이 터지기 잘하는 ‘시끄러운’ 술을 좋아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술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 술이란 조용히 있다가 사람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인데, 이 술은 그 자체가 벌써 시끄러운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탕수수 설탕과 효모를 넣어 탄산이 더 많이 생기게 했다. 들어가는 설탕의 양에 따라 공기 방울의 양이 결정된다. 보관하는 병의 유리를 두껍게 했다. ‘소란스러운’ 액체를 잡아 두려면 그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기온이 올라가면 액체가 더 소란스러워져서 병을 터트릴 수 있으므로 햇빛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병에 착색했다. 

특수한 마개를 제작했다. 코르크 마개를 병 입구에 반만 들어가게 하고 꽉 눌러 넓적하게 퍼지게 한 뒤 얇은 뚜껑을 덮고 철선으로 감았다. 가축의 입에 하듯 ‘부리 망을 씌운다(museler)’ 고 한다. 그러므로 샴페인을 딸 때는 씌운 부리 망을 벗겨 내야 한다.



병 안에 가축 비슷한 것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철선을 천천히 풀어내고 동그란 알루미늄 판을 걷어 내고 코르크를 조금씩 가만가만 밀어 당겨 거의 다 나왔을 때 확 잡아 뺀다. 그렇게 정중한 손길이 있어야 내용물을 온전히 다 마실 수 있다. 아니면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와 내용물이 절반 이상 날아가 버린다. 


요즘은 소리를 내며 터트리는 용도의 샴페인이 따로 나온다. 기분만 내려면 이 샴페인을 사서 코르크를 쭉 잡아 빼면 된다. 그리고 옷을 흠뻑 적시면 된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제조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포도를 눌러 짠 즙에 설탕과 효모를 넣고 1차 발효시킨 후 병에 넣어 2차 발효에 들어간다. 발효되면서 탄산이 만들어진다. 

일정한 온도와 낮은 조도를 유지하고 병을 5도 정도 기울여 눕혀 두는데, 마지막 4~6주 동안은 매일 병을 조금씩 돌려 효모 찌꺼기가 병 입구에 모이도록 한다. 숙련된 작업자는 하루 5만 개까지 병을 돌린다. 


효모 찌꺼기가 병 입구에 모이면 찬 소금물로 병목을 급속 냉각한 후에 마개를 열어 얼음 덩어리가 된 찌꺼기를 빼낸다. 그리고 설탕을 넣은 후 마개를 닫고 다시 숙성에 들어간다. 최소한 5년 이상 숙성하는 브랜드도 있다. 그만큼 질도 좋아진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문가가 아니면 조용히 있으면 된다.


2010년 북유럽 발틱 해 50m 아래서 잠수부 한 사람이 샴페인 168개 병을 발견했다. 

배가 삭아버려 정확한 제작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지만 100년도 더 된 술이라고 추정했다. 

두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하나는 이미 사라진 회사이고 하나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라는 브랜드였다. ‘뵈브’는 ‘미망인, 과부’라는 단어인데, 샴페인 브랜드로는 별로 끌리는 이름은 아니지만 최상급 샴페인이다. 19세기 러시아 황실까지 샴페인을 댔던 탁월한 상술로 유명해진 미망인이다. 


어쨌든 100년이 넘게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액체를 마셔본 결과 그 맛이 좋았다고 한다. 햇빛도 들지 않고 산소가 없는 4℃ 차가운 바다에서 해저의 적당한 압력을 받으며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조건에서 보관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 병에 5만 유로, 즉 5천만 원이었다. 

바닷속을 들어가면서 샴페인을 건져 횡재를 할 것이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샴페인은 들어간 설탕 양에 따라 크게 엑스트라 드라이, 드라이, 스위트로 구분하는데, 

프랑스인들의 구분은 더 세밀하다. 당분과 효모 등을 넣어 제조되는 것이므로 생산 연도가 무의미하고 표시도 하지 않는다. 브랜드마다 저장하고 있는 여러 원액을 혼합해서 술의 맛을 유지한다.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팀의 미각이 그 맛을 유지시키는 주역이다. 


병의 크기에 따라 이름도 붙어 있다. 1.5ℓ는 ‘마그넘(magnum)’인데 제일 느리게 숙성하고 잘 보존된다. 그 두 배인 3ℓ짜리 병의 이름은 ‘제로보암(jeroboam)’으로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명 비슷하다. 


샴페인은 길고 가느다란 유리잔 ‘플루트’에 마셔야 공기 방울이 올라가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최근 연구팀은 다른 제안을 하고 있다. 


좁은 잔에 샴페인을 마시면 향을 위로 끌어올리는 공기 방울속에 탄산이 농축되어 쏘는 맛이 너무 강해지고, 이렇게 되면 후각과 미각을 “공격해서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포도주 잔처럼 적당히 둥근 잔에 마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샴페인은 입 안에서 공기 방울의 공격을 받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닌가? 

콜라처럼 극단적으로 입안을 공격해서 코까지 시큰하게 하는 이상한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가?



어쨌든 공기 방울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거나 공기 방울이 크면 질이 낮다는 표시다. 차게 서빙한다. 온도가 높으면 공기 방울이 빨리 날아가고 맛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10도 안팎이 적당하다. 


최고급 식사에 꼭 따라야 하는 코스처럼 얼음 통에 넣은 샴페인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20~30분만 꽂아두면 된다. 그 보다 더 간편하게 적당한 온도를 맞추려면 냉장고에 3~4 시간 넣어 둔다. 

드라이는 생굴이나 해산물에 어울린다. 스위트는 디저트와 마신다. 안주는 다양하다. 멜론에 싼 베이컨도 좋지만 아이스크림, 마카롱도 잘 어울리는 안주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맛이 부드러워도 술이란 마시면 취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술이다. 

기분이 좋아지다가 조용히 뒤로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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