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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May 13. 2024

사하라 대추야자 그늘 아래 박하차 석 잔은 천국의 행복

‘오아시스’라는 단어는 맑고 싱싱한 청량감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아시스에 도착해 물을 마셨다고 하면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상상과 실제는 심히 다르다. 


인색하게 고여 있는 탁한 물, 모래 먼지에 뿌옇게 덮여 모래와 잘 구분되지 않는 나무들, 그것이 오아시스다. 정말 실망스럽고 빈약하다. 물론 오아시스 도시도 있기는 하지만. 

야박하지만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는데, ‘겔타(guelta)’라고 부른다.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대개는 땅을 파서 만든 우물에서 힘들게 길어 올린 그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인다. 



오아시스 면적은 전체 사막 면적의 0.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가축에게 사막 전체와 맞먹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거기에 저장되어 있는 귀중한 생명수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사막이 시작되는 경계선에 있는 오아시스들은 사하라도 들어가는 ‘대문들’이다. 

‘라구아트(Laghouat)’나 ‘비스크라(Biskra)’같은 알제리 도시다.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가르다야(Ghardaïa)’가 있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엘 메니아(El Menia)’가 있다. 거기서 남서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티미문(Timmimoun)’, 남동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타만라세트(Tamanrasset)’가 있다. 


이렇게 오아시스 도시 이름을 나열하면 가까이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수 백 킬로미터씩 떨어진 도시들이다. 

가르다야에서 타만라세트까지는 거리가 천 킬로미터다. 

이국적인 이름의 오아시스 도시들은 서울처럼 메갈로폴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도시도 아니다. 

인구가 서울의 한 구 정도도 안 된다.  


그런데 망망한 모래 벌판에서 물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아시스는 사막이 되기 이전에 물이 흘렀던 계곡에 몰려 있다. 그렇다고 물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높은 산들이 계곡을 따라 물을 보내준다. 

알제리 사막 북부에 있는 ‘사하라 아틀라스(Sahara Atlas)’산맥도 그 역할을 한다. 


사막이 시작되는 경계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 사막을 굽어 보고 있는 

2천~3천 미터의 높은 산들에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 물줄기들이 생긴다. 

그 물줄기들이 모여 얕고 넓게 덮였다가 다시 갈라져 땅 밑으로 사라진다. 

바닥에 자국만 남기고 지하로 들어간 물이 오아시스에 물을 대준다. 

산꼭대기를 덮고 있던 눈이 녹은 물도 있다. 여름에 온도가 올라가면 조금씩 녹아 지하로 흘러 모인다.


사하라 사막 아래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저수지가 있다. 그렇게 목마른 땅 아래 그 많은 물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렇다. 

1만 년 전부터 고여 있는 이 담수의 양은 지구상에 있는 담수 총량의 20배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미국 오대호 그리고 육지에서 흐르는 모든 강들 합친 것의 20배라는 것이다. 

그 저수지를 덮고 있는 땅의 면적이 90만㎢, 즉 한국 면적의 12배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거대한 물탱크가 지하에 있으니 사하라 사막 사람들은 물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하라와 인근 지역에 사는 3억 명에게 그림 속의 떡이다. 

물 부족으로 ‘극도로 위험’한 지역이니 그 유혹은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러나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람의 팔로 끌어올리는 정도만 써야 한다고. 

 

물처럼 물을 쓰면 금방 바닥이 나고, 물 높이가 내려 갈수록 퍼 올리는 데 힘이 더 들어야 하고, 

물이 없어지면 땅이 가라앉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최근 연구 결과로는 조금씩은 채워진다고 하는데, 그 양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그렇다고 아주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뽑아 쓴다. 

석유와 가스 개발을 위해 새로 건설한 도시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부족한 농지를 개발해 농사를 짓기도 한다. 


사막에 밭을 만들면 좋은 점이 많다. 해충이 없어 농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유기농법이다. 

씻지 않아도 되는 질 좋은 감자, 토마토, 땅콩, 양파가 사막 한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이 기막힌 채마밭은 오래 쓰지 못한다. 

수 백 만년 전 사하라가 바다였을 때 머금고 있던 소금기가 점점 올라와 작물이 시들어 버린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반경으로 동그란 밭을 만들었다가 버리고 옆으로 옮겨 다시 밭을 만든다. 

드론으로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모래밭에 우주인들이 녹색 도장을 찍은 것 같다.


사하라 하면 모래 벌판을 걷는 카라반부터 떠오른다. 

그래서 낙타를 탄 유목민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카라반의 수는 많지 않았다. 유목민 가운데서도 강단과 지구력이 있고 전투적인 소수의 사람들만 직업적으로 했던 일이었다. 

사막의 주민은 그들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오아시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래 평원에 있는 한 뼘 좁은 땅 오아시스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추야자나무 덕분이다. 

대추야자는 저절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에 사람이 심은 것이다. 

처음에는 물을 넉넉하게 주어야 하지만 몇 년 주고 나면 

스스로 물을 찾아 뿌리를 깊이 땅에 박고 자라는 씩씩한 나무다. 



대추야자는 사막 환경에 최적화된 식물이다. 

가지들은 나무 꼭대기 위로 몰려 분수 모양으로 뻗고 자라는데, 

잎의 표면을 막이 한 겹 덮고 있어 수분이 날아가지 않는다. 

줄기도 죽은 껍질로 두껍게 싸여 있어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갑옷을 찾아서 잘 두르고 있는 나무다. 


뿌리는 땅속 15m까지 뻗어 필요한 물기를 찾아 빨아올리는데, 

아파트로 치면 5층이 넘는 길이까지 땅을 뚫고 내려간다. 

모래밭 한가운데서 30m 높이까지 수직으로 곧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은 그 엄청난 뿌리의 힘이다.  


대추야자나무의 그늘은 자연산 냉장실이다. 

뜨거운 바람과 뜨거운 햇빛을 막아 시원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식물이 뿜는 습기를 공기 중에 잡아 두었다가 아침이 되면 이슬을 맺어 돌려준다. 

그 그늘에서 오렌지나 레몬 같은 과실나무를 키우고, 그 과실나무 그늘에 채소를 심어 기른다. 

그늘을 한 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알뜰하게 쓴다. 


그늘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막에 가면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그늘이 보이면 그 속에 머리부터 들이밀고 싶어 진다. 자동차 그림자도 그늘이다. 

모자 없이 다니다가 천 조각 하나를 머리에 올리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깜짝 놀란다. 

그것도 그늘이라고!  


오아시스 사람들에게 대추야자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박하 차를 석 잔 마시는 것은 

‘천국에서 맛보는 행복’이다. 

살림이 넉넉한 사람들은 대추야자나무가 우거진 곳에 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다. 나름 운치가 있다. 


해가 지고 선선해진 후에 바닥에 깔린 카펫에 앉아 설탕이 흠뻑 들어간 쌉쌀한 박하 물을 마시면 

햇살로 나른하고 피로해진 몸이 당분으로 속속들이 위로를 받는다. 

과연 천국이라 할만하다.  



오아시스 사람들에게 대추야자는 버릴 것이 없는 나무다. 

줄기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든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다. 

나무 비슷한 것은 전부 대추야자다. 다른 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넓은 잎이 달린 가지는 지붕을 덮고 울타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고 돗자리, 바구니, 밧줄의 재료도 된다. 

대추씨도 버리지 않고 빻아서 낙타가 먹게 한다. 

꼭대기 가지를 쳐내면 나오는 수액은 봄 절기 여러 달 동안 가족들이 마시는 음료다. 

들큼하다. 발효시키면 맥주 비슷해진다. 


대추야자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수 나무가 따로 있어 수정해주어야 한다. 

수정해서 맺은 열매는 무거운 묶음으로 땅을 보며 휘어져 매달려 있다. 

나무 한 그루에 달리는 열매가 천 개나 되는 데, 그 많은 열매가 아주 가느다란 갈색 가지들에 매달려 있다. 


열매는 끈끈한 단맛 덩어리다. 말리면 무게의 절반까지 설탕이다. 

당분이 많아서 더운 날씨에 아무리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열매에 들어 있는 다섯 종류 당분은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흡수되어 피로를 회복시켜 주고 에너지를 준다. 


사막 지역의 시장에는 어디나 갈색 열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알제리 비스크라 근방 ‘톨가(Tolga)’에서 생산되는 대추야자열매가 유명하다. 

일 년에 한 번 지하수가 범람하는 데, 지하수에 있는 소금기가 열매의 단맛을 더 높여 준다. 

우리가 말하는 ‘단짠’이다. 알제 공항 가게에 쌓여 있는 선물용 대추야자 팩을 살펴보면 산지가 대개 톨가다. 


서울로 가져온 대추야자열매를 먹고 나서 씨를 화분에 심어보았다. 

줄기가 높이 올라가고 녹색 잎이 나와 뻗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힘이 없었다. 도무지 열매가 매달릴 것 같지 않은 몽롱하고 허약한 풀이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강한 햇살이나 건조한 모래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맞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벌을 주는 것이다. 

다시는 화분에 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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