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웅식 Feb 21. 2024

나는 항상, '구끼'라고 말한다(8)

그는 내가 ‘구끼’라는 말만 하듯이 ‘혁명’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뱉었다. 아마, 심리학과 자원봉사자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그를 보면, 뭐라고 메모지에 적을까. 그의 부모가 곧 철거가 되는 집 앞에서 농성중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내용을 더 첨가할까. 전에 심리학과 자원봉사자가 종이컵을 잘근잘근 씹은 그를 보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불안해요?”

 “아니요. 혁명이 필요해요.”

 아버지는 집에 태극기 다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와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태극기 다는 날이 되면 반듯하게 접은 태극기를 보관함에서 꺼내 깃봉에 매달았다. 태극기를 베란다에 걸어놓고는 오른손을 올려 오른쪽 눈썹 위에 올려놓고 태극기를 몇 분 동안 쳐다보았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아버지는 빨갱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배를 선물한 그는 빨갱이인 줄도 모르겠다. 빨갱이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마음에 못 박힌 사람들.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고 빨갱이라고 부르니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나처럼 마음이 아플 것이다. 

 배를 하나 더 만들어 그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 세상을 모두 휩쓸어가는 홍수가 터졌을 때, 그도 물 위로 둥둥 떠내려가게 말이다. 그의 가족을 물 위로 둥둥 떠내려가게 하기 위해서는 큰 배가 필요하겠다. 그에게는 동생도 둘이나 있으니까 큰 배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가 사랑방에서 나왔다. 내 옆에 있는 돋보기안경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지웅이 쪽으로 걸어간 다음, 지웅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지웅이는 담장에 눈길을 주었다. 지웅이 옆에는 종이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있다. 지웅이는 종이 한 장을 구겨, 담을 향해 던졌다. 작은 포물선을 그리다가 멀리 가지 못하고 지웅이 발 앞에 툭 떨어졌다. 지웅이는 다시 담을 바라보았다. 답답하지 않을까? 종일 지웅이는 그 일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는 이 파란 상자에서 오랫동안 담벼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구겨진 종이를 던질 것이다.

 그도 종이를 구기고, 힘차게 던졌다. 종이가 포물선을 그리다가 담벼락에 부닥치고 튕겨 나왔다. 지웅이가 종이를 구기고 담벼락을 향해 던지면, 그도 종이를 구기고 담벼락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똑같이 담벼락을 봤다. 담벼락에 구멍이라도 뚫을 것처럼, 골똘히. 

 “담을 넘어가고 싶니?” 

 그도 마음을 읽는 부류 쪽에 속한다. 지웅이는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지웅이가 방에 들어간 것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웅이는 울타리에도 숨이 막힐 것이다. 그는 마루를 가로질러 가서, 문을 열고, 담 아래로 갔다. 담은 그의 키보다 약간 높다. 그는 종이를 줍고 지웅이 곁으로 돌아왔다.

  “담을 넘어가면 선생님에게 혼이 날 것 같고. 담은 높고. 담 바깥을 어떻게 구경하지?”

그는 창고로 뛰어갔다. 그는 철제 사다리를 오른쪽 팔 밑에 낀 채, 돌아왔다. 사다리를 담에 기댔다. 사다리는 벌겋게 녹이 슬어 있었다. 그가 사닥다리에서 발을 올리자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위험한걸, 지웅아, 선생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나봐.” 

그는 다시 돌아와 지웅이를 어깨까지 들어 올려 목마를 태우고 담 아래로 갔다.

“잘 보이니? 여기 좀 답답할 거야.”

 지웅이가 손뼉을 치며 히죽거렸다. 지웅이는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담에 올라가 앉아, 세상 구경하면 좋겠다. 좀 더 높은 곳에 앉아 세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기분. 비라도 내리기 시작하면 땅에 떨어져 튕기는 빗줄기의 모습도 구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