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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Jun 05. 2024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어깨너머

어깨너머  / 박숙경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등잔불처럼 구석에서 가물거리는 말


가만히 있어도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어깨

그 너머에 약간의 다정함

또는 친절함


아이들 어깨너머로 컴퓨터를 익혔다

어깨너머, 물렁한 말들을 좋아해서

자주 물렁해졌다


불린 쌀을 꼭꼭 씹어 막냇동생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의

어깨너머를 배워 할머니의 손발톱을 깎아드렸다 딱딱해진

것들이 밖으로 자라는 것 같았다


돌부리를 차 시커멓던 발톱이 빠졌던 유년이 내 어깨너머

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하나씩 물어보며 워드를 익히던 일은 아이들

유년의 어깨너머일 것이다


되짚어가는 일이 더 많아

돌아보면 늘 거기에 서 있는 사람

어깨너머일 것이다


푹풍전야, 지금은

오늘의 어깨너머가 깨질 듯이 고요하다


86세 어머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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