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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삭 Dec 20. 2023

1. 시작

02. 첫째의 40개월 발달기


모든 시작과 이유는 뇌 발달



아이들이 태어나서 신체의 모든 부분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기간 40개월.

그리고 그중 이 시기의 뇌 발달은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할 만큼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늦었던 첫째에게는 언어만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은 원래 이렇게 많은 이슈가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래서 언어 외에는 그냥 크는 과정이겠거니 했습니다.


언어 외에 발달 과정 중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어려움에 이름을 붙이면 야경증 / 야뇨증 / 대변 훈련 / 예민성 / 불안증이었습니다. 이 중 가장 처음 나타난 건 야경증이었습니다. 딱 24개월이 된 다음날부터 시작해서 2년을 꼬박 매일 밤 증상이 나타났고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며 몽유병으로 바뀌다가 초등 3학년이 넘어가면서는 증상들은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새벽에 무조건 한 번은 깨서 화장실을 갑니다. 야경증에 대해 아시는 분도 있고 아닌 분들도 계실 테지만 


경증은 비렘(NREM) 수면 각성장애 중 하나로, 비렘수면기 중 수면 초반 1/3 앞쪽에서 가장 흔하며, 주로 소아에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며 공황상태를 보이는 질환입니다. 


이 증상처럼 저희 아이도 밤에 자다가 이유 없이 괴성을 지르며 깼는데 악몽을 꾼 거도 아니고 스스로 뭔가에 두려움을 느껴서도 아니고 잠꼬대하는 것과 비슷했지만 말이 아닌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깼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야경증을 가진 아이들 모두가 ADHD는 아니지만 ADHD 아이들 중 야경증을 가진 아이들이 꾀 된다고 합니다. ADHD는 뇌의 문제이기 때문에 밤에 수면 중 야경증 / 몽유병 / 심한 잠꼬대 / 야뇨증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출산 후 힘든 육아 시기는 신생아 때로 꼽는데 아이들의 수면 간격이나 패턴이 일정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지만 조금만 참으면 약 100일부터는 더러 통잠(안 깨고 5~8시간 자는 잠)을 자는 덕에 100일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옵니다. 아이의 발달 변화는 엄마도 밤에 길게 잘 수 있게 해 주고 수면 문제가 조금 개선되는 것만으로도 덜 힘들어지면서 저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그래도 여전히 힘들지만요) 그 "기적"의 시기가 저에게는 야경증과 몽유병 그리고 야뇨증 증세를 가진 첫째 덕분에 5년 뒤에나 가능했고 5년간 잠을 제대로 못 자 너무 힘들었습니다. 

새벽의 종소리

야경증과 몽유병 같은 경우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발작 증세를 보이거나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중이지만 뇌는 여전히 잠들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즉시 들어 올리거나 갑작스럽게 깨우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시기 5개월 된 둘째가 있었는데 둘째는 100일도 되기 전에 통잠을 잤으나 첫째의 야경증 시작으로 옆에서 같이 깼고 동시에 둘을 달래야 해서 더 힘들었습니다(결국 둘째는 2년간 부부방으로 침대를 옮겼습니다). 야경증 같은 경우가 정말 힘든데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그냥 낮에 때 부리듯 지르는 소리랑은 다른 종류의 심장이 덜컥하는 소리였습니다.( 공포영화에서 공포심 가득한 비명 소리 같은) 소리를 지르면 잠시 옆에서 기다렸다가 아이가 자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깨서 울 때쯤 안아 올려 달래고 다시 재워야 했습니다. 

 

그 후 1년 뒤 아이는 기저귀를 때고 배변 훈련을 시작했고 시작 3일 만에 낮에는 실수 한번 없이 소변을 가렸지만 밤에는 매일 실수를 하는 야뇨증 증상을 보였습니다. 자기 전 1시간 후로는 절대로 수분 섭취를 못하게 하고 자기 10분 전 화장실을 다녀와서 재워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야경증 이후 1년 후 야뇨증을 보였는데 두 증상이 한 밤에 다른 시간 때로 나오니 정말 이 시기 잠을 거의 못 잤습니다. 매일 시트 빨래의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야경증처럼 소리를 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어서 정확한 시간 체크가 어려워 아이가 축축한 시트 위에서 몇 시간을 자는 경우도 생겼고 그 경우 체온 유지의 어려움으로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피부도 문제가 생겨서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모두 그저 시간이 약인 증상들이라 매일 아이가 잠들고 약 2시간 지난 뒤 자는 아이를 안아 화장실로 데리고 가 변기에 앉혔고 소변을 보면 다시 침대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커 갔고 48개월쯤 지나자 야경증과 야뇨증 증세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나온 건 몽유병이었습니다. 

대변훈련의 그 강렬함

밤에 야뇨 증상은 있었지만 낮 동안의 소변 훈련은 손쉽게 해낸 첫째가 기특했고 이 쉬운 훈련의 마무리 덕분에 다음 단계에 대변 훈련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가벼운 마음은 금세 예상과 다른 현실을 만났습니다. 대변 훈련은 몇 개월이 걸렸고 정말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만큼 대단했습니다. 질감도 냄새도 다르다 보니 참으로 강렬한 경험을 준 시기였습니다. 


첫째는 유난히 대변만큼은 변기에 해결하지 못했고 기저귀를 들고 와 입혀달라 때를 부렸습니다. 훈련 시작 초기에 딱 한 번 타이밍을 잘 맞춰서 변기에 성공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의 얼굴에 스치던 표정과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두려움, 불안, 불편함, 무서움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이후 약 6~7개월을 변기에서 해결을 못했고 그 당시 36개월부터 자리가 나서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대변은 참고 집에 와서 기저귀에 하거나 집에 와서 구석에 숨어 바지에 해결했습니다( 아이가 하원하며 급하다 해서 툭하면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큰애를 안고 20분 거리를 뛰었습니다). 이때 매일 일과가 인터넷을 뒤져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고 하나하나 시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운트다운 : 남은 기저귀를 보여주며 이제 다섯 장 남았고 앞으로 이걸 다 쓰면 이제는 변기를 사용하기로 약속을 하고 네 장, 세장,.. 한 장 카운트다운을 하며 때가 다가오는 걸 알려줌 ->그러나 실패 그냥 숨어서 바지에 해결해 버리는 대단한 실행을 해버림

우선 앉아 싸기 :  변기 옆에 신문지 혹은 기저귀를 깔고 볼일을 보도록 하며 화장실에 익숙해지기 ->당연히 실패 ( 바닥에서 하고 싶지 않다 하며 자긴 강아지가 아니라며 강력하게 거부함)

시간 맞춰 변기 앉히기 : 2시간 혹은 3시간 간격으로 변기 앉히기 -> 실패 (40분도 넘게 기다렸으나 안 함)

부모의 시범 : 엄마 아빠가 화장실 갈 때 데리고 가서 옆에서 이야기하며 "엄마 아빠도 다하는 일이야 너도 해야 돼 어려운 거 아니야"를 보여 주는 것 -> 실패 (냄새난다 짜증 내고 역겹다 함 ㅠㅠ 우리도 애지만 같이 들어간 거 수치스러웠는데 자기만 피해 본 듯 화냄) 


아이들은 성향도 성격도 다 달라 "누구에게나" 통하는 육아법은 사실상 없어서 매번 문제가 생기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찾다가 하나의 글을 보았는데 불안도가 높거나 예민한 아이들은 변기에 변을 보는 것 자체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들이 있고 자신의 신체에서 나온 한 부분이 변기에 버려지는 것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정도의 공포심이라고 설명하며 어른으로서는 이해할 수는 없으나 아이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는 두려움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아이에게 마음을 물어보았고 아이는 두렵다 무섭다 했습니다. 이 일로 첫째의 성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시간마다 혹은 반응이 보일 때마다 변기에 앉히고 기다리는 것 을 멈췄습니다. 


첫째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설명과 학습이었습니다. 대변 훈련 동화책 두세 권 중 최대한 첫째와 비슷한 모습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책을 골라서 반복해서 읽어주고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어려울 수 있지만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개월 수에 맞춰해줘야 하는 훈련과 일상적이 생활교육에 대한 내용을 담은 학습지가 있는 걸 알게 되어 신청 후 변기 훈련 책자와 그 학습지 장난감으로(인형을 변기에 앉히면 음성이 나오고 물소리가 남) 책도 읽어주고 화장실에 같이 가져가 아이가 화장실에 앉는 동안 인형도 앉혀주고 물도 같이 내려줬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애쓴 결과 아이는 드디어 스스로 도전하길 원했고 그 한 번의 아이가 결정한 도전의 시작은 육아의 산을 하나 무사히 넘게 했습니다. 이 경험은 첫째의 성장뿐 아니라 저에게 엄마로서 큰 성장을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큰아이에게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었고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스스로 도전할 만큼 용기 있는 아이라는 것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EW

40개월까지 있었던 이름 있는 증상 말고도 일상의 어려움을 느끼게 할 만큼 아이는 예민했습니다. 성격은 무난했고 무던했고 털털했지만 불안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 장소, 옷, 음식 등 모든 것의 시작이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시도하던 상당한 시간을 들여 적응을 시키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를 도와야 했습니다.


 가족여행조차도 저희에게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가서 숙박을 할 경우 새로운 장소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아이의 야뇨/야경증의 어려움도 감수해야 하지만 추가로 아침에 조식을 먹을 때도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해야 하는 선택들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여행이 아닌 최소 5회 미만으로 갔던 식당에서의 외식도 같은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큰 아이는 항상 자신의 애착 이불을 안고 잠이 들었는데 낯선 장소에 갈 때는 그 이불을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손끝의 익숙한 감각의 애착 이불은 긴장감과 불안도를 낮추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식당 혹은 호텔 조식처럼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의 공간을 갈 때는 반드시 구석 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아이는 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제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고 안 움직이다가 테이블에 앉으면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앉은자리가 다른 사람들과 얼굴이 마주 보이는 자리면 음식을 못 먹었기 때문에 들어갈 땐 품에 안아 얼굴을 가려주고 가장 구석의 벽 쪽 자리에 앉아 아이는 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히고 저는 아이 옆에 남편은 아이와 마주 앉아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했을 때 음식을 먹기도 하고 나름 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도 제 팔을 잡고 있거나 자신의 애착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있는 등 편안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외식은 한 달에 한 번도 안 하고 여행도 일 년에 한 번 겨우 했습니다). 


아이가 외부 활동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다 알지 못하는 상황의 순간에 대한 불안도가 높았는데 결국 제가 한 선택은 아이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주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먼저 아이에게 어디를 갈 건지 미리 알려주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그 장소에 가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서 미리 간단히 설명을 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중 도착하기 20분 전에 다시 한번 어디를 가는지 무슨 상황이 될지 알려주었습니다. 도착해서 식당 같은 경우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안고 가고 자리를 잡으면 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 붙이기를 하며 시선이 너무 멀리 가지지 않게 도왔고 주문을 할 때나 음식이 나올 때쯤 직원이 테이블에 찾아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물론 제 설명이 상황을 정확히 예고할 수는 없었지만 그중 설명과 일치하는 상황들은 첫째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긍정적 경험이 되었습니다. 느리지만 차곡차곡 첫째는 처음에 대한 불안감을 즐거운 경험들로 천천히 바꿔 나갔습니다. 시간은 정말 오래 걸렸지만 (약 5~7년) 그 작은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는 큰 희망이었습니다. 



또 생각보다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벌써 저에게는 7~8년 전 일이지만 글을 쓰면서 그때의 경험과 감정들이 떠올라 마음이 지치기는 합니다(제가 부족한 점이 많아 육아가 제게는 참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시간을 정리해 나가는 경험이 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적어두지 않으면 잊었을 부모로서의 노력들과 몰라서 헤매던 실수들 속에서 부족한 엄마의 우여곡절을 품어주고 이해해 주며 작은 몸통으로 씩씩하게 성장해 가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내 아이의 자랑스러움을 잊지 않게 될 것 같아 글을 써나가는 이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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